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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딸에게 배운 사랑과 자유 - 홍신자 무용가 - 휴먼토크 『내 마음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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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3319
등록일 : 2009.08.12 16:38

딸에게 배운 사랑과 자유 - 홍신자 무용가

- 휴먼토크 『내 마음의 고백』 8월 14일(금) 저녁 8시 40분 방송 -


KTV 한국정책방송원(원장 손형기)은 이 시대, 희미해져가는 ‘인정(人情)’의 의미를 되새기고, 국민에게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휴먼토크내 마음의 고백』을 매주 금요일 저녁 8시 40분에 방영하고 있다. 이번 주는 ‘한국 최초의 전위 무용가’이자 ‘구도의 춤꾼’ 홍신자를 만나본다


       



□ 20세기 한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이자 중국 국립무용원의 외국무용연구부장이자 무용평론가 우장핑이 선정한 이사도라 덩컨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동양 전통에 뿌리를 둔 서양 아방가르드 무용의 꽃’ 홍신자. 무용가로서 보낸 춤추듯 산 40여 년의 세월의 이야기와 진정한 자유를 알려준 소중한 딸에게 바치는 그녀의 아름다운 고백을 들어본다.
 

□ <바보사랑, 더 사랑하겠습니다>에서는 올해 결혼 30주년을 맞은 이효준·박신자 부부를 만나본다. 노숙자를 위한 무료급식을 하며 또 다른 사랑을 베풀며 나눔의 마음까지 닮아가는 두 부부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한다.


이 보도자료와 관련하여 보다 자세한 내용이나 취재를 원하시면

KTV 방송제작 1 과 추동진PD(☎ 02-3450-2248)에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첨부 1.

자유를 꿈꾸던 홍신자에게

진정한 자유와 사랑을 알려준 딸...


□ 우리나라 무용계의 대표 현대무용가 홍신자. 그녀는 무용가로서는 매우 늦은 나이인 27살에 처음 무용을 시작했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 호텔경영을 배우기 위해 뉴욕으로 유학을 떠난 그녀는 우연히 알윈 니콜라이 무용단의 현대 무용 공연을 보게 되었다. 처음 본 현대 무용이었지만 그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 홍신자. 그녀는 그 길로 집에 돌아와 춤을 추고 싶다는 열망에 빠지게 되었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홍신자는 무용학원을 찾아갔다. 그러나 그녀의 나이를 들은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몸이 굳을 대로 굳은 나이었던 것이다. 홍신자는 겨우 허락을 받고 무용가가 아닌 운동선수처럼 연습을 했다. 연습의 강도가 너무 강해 밤만 되면 늘 녹초가 되어 걷지도 못할 정도로 연습을 한 홍신자...

   그녀는 약 8년의 피나는 노력과 연습을 한 끝에 1973년 뉴욕에서 <제례>라는 공연을 올리게 됐다. 무대 중간에 제사상을 놓고 자신의 모든 과거와 언니의 죽음, 인간의 운명, 여인의 슬픔, 한국 역사의 한을 태우는 의식을 무용을 통해 보여준 홍신자... 그녀는 그 이후 뉴욕타임즈 등에 기사가 실리는 등 많은 비평가에게 호평을 받으며 드디어 무용계의 새로운 별로 떠오르게 됐다. 그 이후 현대무용가로서 성공 가도를 달리던 홍신자.

   그녀는 무용가로서 가장 높은 곳에 서있을 때 갑자기 인도로 떠났다. 진정한 자유와 꿈을 찾아서였다. 그곳에서 인도의 철학자 오쇼 라즈니쉬의 한국인 첫 제자로 지내며 힘겨운 구도의 시간을 보낸 그녀... 그곳에서 무용을 통해 자유를 찾고, 웃음으로 깨달음을 얻는 그녀.

   삼 년 후 무용가로 복귀한 홍신자는 ‘구도의 춤꾼’으로 다시 무용계에 큰 획을 그게 되었다. 인도를 떠난 후 1981년 뉴욕에서 'Laughing Stone'을 창단한 홍신자. 돌도 웃는다는 뜻의 무용단을 창단한 후 지금까지 쉼 없이 무용을 통한 구도의 길을 걷는 그녀...  1993년 홍신자는 영구 귀국해 경기도 안성에 <웃는돌>이라는 명상센터 겸 한국인 무용가들로 구성된 무용단을 만들었다. 그 후, 활발한 무용 활동 및 자연과 예술을 접목한 안성 죽산국제예술제를 개최해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는 그녀... 홍신자는 춤을 추듯 삶의 순간순간을 살아가고 있다.

   마흔 살이 되면 모든 것을 잊고 죽겠다고 결심했던 홍신자는 구도의 길을 걸은 후 모든 생각이 바뀌었다. 삶의 소중함과 인생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 것이다. 그 후 홍신자는 미술가 이상남씨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임신 8개월의 몸으로 ‘입에서 꼬리까지’라는 공연을 올릴 정도로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깨달은 홍신자... 마흔이 넘어 낳은 딸, 희는 그 정도로 홍신자에게 너무도 소중하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홍신자 부부는 무용과 미술을 하는 예술가들이었기에 너무도 가난했었다. 낮에도 마약중독자와 알콜중독자들이 돌아다니는 뉴욕의 한 도시에서 신혼집을 구한 홍신자 부부. 그들은 그러한 곳에서 아이를 키울 수 없었다.

   결국 한국에 있는 시댁으로 아이를 보내기로 결심한 홍신자. 그녀는 여비가 없어 6개월 된 딸아이를 남의 품에 안겨 한국으로 보내게 되었다. 딸아이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고 한참동안 홍신자는 딸아이의 울음소리가 귓전에 맴돌았다고 한다.

   일년만 고생하고 다시 딸아이를 데리고 오겠다고 결심한 홍신자는 6개월 후 딸아이가 너무 보고 싶어 한국에 돌아갔다. 하지만, 그 사이 엄마의 품을 잊고 할머니의 품에서 더 안락함을 느끼게 된 딸... 엄마를 보고 피하는 딸아이를 두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오던 홍신자는 평생 잊히지 않는 상처를 얻게 되었다.

   일평생 가장 후회하는 일이 당시 딸아이를 뉴욕에서 한국의 시댁으로 보낸 것이라고 회고하는 홍신자...

   그 후 그녀는 딸에게 주는 편지를 엮어 ‘나도 너에게 자유를 주고 싶다’라는 책을 집필하는 등 어릴 적 딸아이에게 못 쏟은 정을 책을 통해 쏟아내기도 했다. 얼마 전 해외에 있는 딸에게 ‘다시 태어나도 엄마의 딸로 태어나겠다’ 라는 카드를 받고 누구보다 행복하게 웃으며 즐겁게 지내고 있는 홍신자... 그녀는 마흔에 낳은 딸, 희에게 비로소 진정한 사랑과 자유를 얻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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