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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의견

주한 독일 대사관에 문의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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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nanounhappy(nan**)
등록일 : 2004.07.27 06:48
오늘은 지난 7.26. K-TV에서 방영된 특선 다큐, 제2차세계대전의 진실 제1
부 전쟁의 서막을 중심으로 역사 왜곡을 살펴보겠습니다.

K-TV는 프로그램 서두에서 (인용하면) '이 전쟁으로 모두 7천4백만명이 사
망했다'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제2차세계대전사에 관한 그 어떤 문헌에서
도 결코 이 같은 숫자가 제시된 적은 없으며 정설은 최대 6천만명이라고 알
려져 있습니다. 또한 러시아인 사망자가 2천1백만명이라고 했는데 이는 다
시 한번 지적하지만 소련의 잘못된 표기입니다. 또, K-TV는 제2차세계대전
의 기간을 (인용하면) '1935년부터 1945년까지 세계가 휘말린 2차세계대전
은' 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이 또한 명백한 오류입니다. (고치면) 제2차세
계대전은 1939년 9월1일 폴란드를 침공한 독일에 대하여 같은 달 3일 그 당
시 폴란드와 상호 방위 조약을 맺고 있었던 영국과 프랑스가 선전함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계속해서 K-TV는 (인용하면) '1939년 당시 세계 지도자들
은 1차세계대전으로 정권을 잡은 인물들이었다' 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이
또한 명백한 오류입니다. (고치면) 그 당시 세계의 지도자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위치에 있던 국가들의 수반들은 미국의 루스벨트(1933년 제32대 대통
령에 취임),영국의 체임벌린(1937년 수상에 취임),프랑스의 레노(1940년 3
월 수상에 취임),독일(히틀러),이탈리아(무솔리니),소련의 스탈린(1922년
공산당 서기장에 취임) 등으로 독일의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를 제
외한다면 나머지는 K-TV의 소개와는 달리 제1차세계대전과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또, K-TV는 (인용하면) '중립은 미국
의 전통적인 외교 노선이었다.' 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이 또한 명백한 오류
입니다. (고치면) 미국은 외교 역사상 '중립' 이라는 외교 노선을 편 적이 없
으며 이는 미국의 제5대 대통령인 먼로 이래 미국의 전통적인 외교 노선으
로 굳어진 '고립주의'를 오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K-TV
는 히틀러에 대하여 (인용하면) '히틀러는 약속을 지켰다. 그는 실업 문제
를 해결하기 위해 독일의 뉴딜이라고 할 수 있는 정책을 실시했다. 이 사업
은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 못지 않은 성공을 거뒀다. 공공 사업
을 통해 일자리가 생기고 국가 경제에 자금이 순환되자 경제 수요와 생산성
도 함께 높아졌다.'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고치면) 한 마디로 이는 언어
도단입니다. K-TV 말 대로라면 제2차세계대전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입
니다. 제2차세계대전 직전 독일의 경제 상황은 누구보다도 히틀러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으며 사실상의 2인자였던 괴링은 공공연하게 전쟁이 나면
모든 것(경제적 어려움 등)이 해결된다고 말했을 정도로 당시 독일의 경제
는 최악이었습니다. 현재의 독일 경제 체제를 보고 우리는 '사회적 시장 경
제' 라고 합니다. 이는 히틀러 당시의 통제 경제에 대한 부정적 경험과 함
께 자본주의의 자유 방임 주의를 우려한 독일 나름대로의 해법으로 등장한
특이한 경제 체제로 한때 우리나라의 전 정부였던 국민의 정부에서도 관심
을 갖고 연구 했던 사안이기도 합니다. 히틀러의 나치 독일 정부는 개인의
자유를 구속, 통제, 제한하는 각종 법률들을 제정하면서 경제 체제를 소비
를 제한하는 것으로 대표되는 간접적 통제 경제 체체로 전환하였습니다.
또, 모든 국가 자원을 군수공업에 집중 투입하는 바람에 '국가와 국민의 빈
곤을 타개하기 위하여'라는 정권 수립 구호가 무색할 정도로 국민들의 경
제 생활은 피폐해져갔습니다. 구체적으로 히틀러의 나치 독일 정부는 농업
정책에서 발악에 가까울 정도로 국민들을 몰아붙였지만 1933년에서 1939년
까지의 밀 등 주곡 생산량의 증가율이 12%에 그친 통계 자료에서도 알 수
있듯이 완전히 실패하였으며, 이는 그 전에 존재했던 민주적 정부였던 바이
마르 정부 당시의 1924년에서 1932년까지의 밀 등 주곡 생산량의 증가율이
25%였던 것에 비하면 한참 뒤쳐지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공업 정책에서는
상기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모든 국가 자원을 군수 공업에 투입함으로써
명목상으로는 부의 증대를 이루었지만 실제로는 국가만 배부르고 국민은
배고픈 기형적 현상을 초래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이는 1933년에서 1939년
까지의 군수 공업 관련 생산재 증가율이 8배에 달한 반면 국민의 생활과 밀
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소비재의 증가율은 겨우 3배에 그친 통계 자료에서
도 알 수 있습니다. 또, 자립 경제를 외치면서 국민들의 희생을 강요한 결과
가 겨우 1939년 현재 대공황 발생 이전인 1929년 대비 공업 수준이 25% 상
회한 것에 그친 것이라면 더 이상의 언급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울
러, 나치 독일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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