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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V 국민방송

'백범 김구' 인천에 2번 투옥···영욕의 발자취

국민리포트 월~금요일 19시 40분

'백범 김구' 인천에 2번 투옥···영욕의 발자취

등록일 : 2019.01.22

이유리 앵커>
올해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뜻깊은 해인데요.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백범 김구가 인천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젊은 시절 일본 장교를 살해한 사건으로 감옥에 갇혔던 곳이 바로 인천인데요.
그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특별한 전시회를 김정애 국민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김정애 국민기자>
인천의 옛 도심지, 이곳에는 백범 김구의 발자취를 알 수 있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인터뷰> 강덕우 /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이 아파트가 들어선 바로 이곳이 예전 김구 선생이 투옥되었던 감옥이 있었던 자리입니다."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복수심으로 일본 장교를 살해한 백범 김구, 이곳에 있던 감옥인 인천감리서에서 두 차례나 옥살이를 하다 탈출했습니다.
지난 1896년, 당시 22살인 김구가 사형선고를 받고 갇혀 있었지만 독서와 사색으로 이후 독립운동가로 변신했는데요.
잊지 못할 역사의 현장인 인천, '청년 김창수, 인천에서 김구가 되다'라는 주제로 의미 있는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김구 선생의 원래 이름은 김창수. 인천의 독립운동가인 유안무가 김구로 이름을 바꾸도록 권유했다는 일화가 남아있는데요.
당시 감옥 크기만한 작은 공간의 전시장을 관람객들은 숙연한 분위기로 돌아봅니다.

인터뷰> 옥은영 / 인천시 부평구
"굉장히 가슴 아픈 역사적 사실이고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눈길을 끄는 것은 인천 감리서, 김구가 수감됐던 이곳의 모습이 담긴 도면이 전시됐습니다.
임시정부 주석이었던 김구 선생이 두 아들에게 유서를 대신해 쓴 '백범일지'도 공개됐습니다.
독립투쟁에 대한 자신의 소회를 1929년과 43년에 쓴 두 권의 친필 원본은 현재 보물로 지정돼있습니다.
1910년 독립운동자금 모집 사건이 일제의 농간으로 엉뚱하게 강도 사건으로 바뀌었는데요.
이에 연루된 김구가 다시 인천 감옥에 수감돼 항구 보수 공사에 동원됐던 당시 사진도 보입니다.

인터뷰> 연창호 / 인천광역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 주무관
"지역 시민들이 백범일지에 대해서 책을 읽어볼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하고자 기획되었습니다."

광복 후 김구는 인천의 한 교회를 찾았는데요.
과거 상해로 탈출하기까지 도와준 인천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연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환영대회가 열린 강화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홍익인간'이라고 쓴 휘호를 남겼습니다.

인터뷰> 윤치문 / 전 인천 합일초 교장
"서고에 구겨진 채로 있어서 귀한 보물을 이렇게 썩혀서야 되겠나 이런 생각에서 교장실에 걸어놓게 된 것입니다."

현장음>
"교장실에 '홍익인간' 쓰여 있는 거 알아요?"
(네.)
"누가 쓰신 건데요?"
(김구 선생님이요. 저희 그걸로 뮤지컬도 해요.)

인터뷰> 이은용 / 강화 기독교역사연구소장
"김구 선생님께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는 그런 뜻으로 홍익인간의 휘호를 써주신 겁니다."

2019년 올해는 3·1독립만세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인데요.
백범 김구 선생의 발자취를 돌아보면서 그분의 나라 사랑 정신을 되새겨보시면 어떨까요?

국민리포트 김정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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