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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V 국민방송

한국의 서원과 서당 [유용화의 오늘의 눈]

KTV 대한뉴스 월~금요일 19시 00분

한국의 서원과 서당 [유용화의 오늘의 눈]

등록일 : 2019.05.15

유용화 앵커>
조선의 성리학을 대표하는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될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조선시대의 서원 중 잔존하는 9곳이 등재될것 같은데요,
서원의 효시는 1543년 중종 38년에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서원을 꼽습니다.

한때 서원은 조선시대에 700여곳으로 늘어 지방에서의 강력한 정치적 여론 형성기관으로 자리잡기도 했습니다.

서원은 본래 지방의 사학기관으로서 제사와 강학을 주된 임무로 했는데요
지역 사대부들의 근거지로 작동해왔습니다.

또한 향촌운영기구 역할도 했죠.

그러나 조선 후기에 갈수록 그 폐해가 심해져 영조시대에는 서원철폐 조치를 단행하기도 합니다.

세도정치의 외형적 지주로서 노론,소론, 남인 사이의 붕당형성과 정국을 분열,혼란 시키는 악영향을 끼쳤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서원의 건립과 유지에 필요한 비용등을 지방관에게 각출하거나, 교화를 구실로 백성들을 착취한다는 비난도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반면에 지방의 교육기관으로 서당이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존재했던 서당에서는 중앙의 권문세족과 전혀 연관이 없는 유학자들이- 유교경전 교육을 담당했습니다.

이들은 주자의 성리학과 달리, 공자 맹자의 원전에 충실한 유교 철학을 가르쳤는데요.

백성이 근본이라는 '민본주의', 백성의 뜻이 하늘의 뜻이기 때문에 왕은 항시 백성의 뜻을 살펴야 한다는 것과 하늘과 백성의 뜻을 거스를 때는 왕위를 잃는다는 '역성혁명론'등을 주요 논제로 교습했습니다.

조선 후기 세습귀족들과 지방관료들의 폐습 및 착취와 수탈이 강화되면서 백성들은 서당의 개신유학자들 중심으로 뭉치게 되고 지역의 여론이 형성됩니다.

더 나아가서 이들은 지역민란의 지도자들로 등극하게 되고, 동학 농민혁명 및 일제와 맞서는 의병운동에 앞장서게 됩니다.

유교를 효시로 하는 조선시대는 초기 레토릭으로만 민본주의 사상이 있었지만, 후기로 갈수록 백성이 근본이라는 사상이 민란 등과 결합하여, 시대와 역사를 이끌어 나가는 변혁적, 국민적 이념 및 역사적 행위로 자리잡게 되는 것입니다.

서원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와 함께 서당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개신 유학자들의 활약상도 다시 검토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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