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메뉴바로가기

배너 닫기
비상진료에 따른 병·의원 이용안내 페이지로 바로가기 의대 증원 필요성과 의사 집단행동 관련 영상보기
본문

KTV 국민방송

남북적십자회담 개최 [한 눈에 보이는 정책]

KTV 대한뉴스 월~금요일 19시 00분

남북적십자회담 개최 [한 눈에 보이는 정책]

등록일 : 2018.06.23

계속해서 이슈를 알기 쉽고 깊이 있게 들여 다 보는 <한 눈에 보이는 정책> 순서입니다.
8.15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논의하기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이 금강산에서 열렸습니다.
역사적인 합의를 앞둔 상황을 남북적십자회담 양측 대표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들어보시죠.

인터뷰> 박용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오늘 오전 금강산 호텔)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6.15 공동선언 채택 이후 이 금강산이 바로 반세기 이상 갈라져 있었던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상봉이 연이어 진행되가지고 그야말로 민족적 화해와 단합의 상징 말하자면 흩어진 가족친척들의 상봉을 위한 유일한 장소로써 매우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박경서/ 대한적십자사 회장 (오늘 오전 금강산 호텔)
“금강산의 정기를 받고 금강산 자연의 모든 철학을 따서 내민족의 한을 적십자사가 풀어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2015년 10월 이후 3년 만에 남북 이산가족이 만납니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 지금까지 모두 20차례 열렸습니다.
남북관계 상황에 따라 중단과 재개가 반복됐던 역대 이산가족 상봉의 역사를 정리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남과 북으로 각기 흩어졌던 가족들이 처음 다시 만난 건, 지난 85년 고향방문단 사업을 통해서였습니다.
분단된 지 무려 40년, 남북 적십자 회담이 시작된 지 15년 만이었습니다.
당시 남북한 이산가족 각각 50명이 서울과 평양을 교차 방문했지만, 명단 교환이 늦어져 그나마 실제 가족을 만난 사람은 절반에 불과했습니다.
게다가 고향방문단 사업은 단발에 그쳤고, 그 뒤 상봉행사는 15년을 표류했습니다.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은 상봉행사가 본격적으로 재개되는 발판이 됐습니다.
상봉자는 배로 늘었고 명단교환과 생사확인과 같은 사전작업으로 상봉확률 역시 높였습니다.
2002년부터는 금강산에서 상봉행사가 시작됐고 3년 뒤에는 거동이 불편한 이산가족을 위한 화상상봉센터도 마련됐습니다.
해마다 열리던 상봉행사는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등으로 남북 관계가 얼어붙어 중단됐다가 2014년 2월 재개됐습니다.
지금까지 열린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모두 20차례, 총 4,677가족 2만 3,519명이 상봉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생존한 5만 8천여 명의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80세 이상의 고령자여서 상봉정례화와 생사확인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60여 년간 헤어졌던 이산가족들, 기나긴 세월의 깊이만큼 저마다의 사연도 다 다릅니다.
눈감기 전 형제를 만날 수 있다면, 고향 땅을 밟아볼 수 있다면, 이산가족들의 애 타는 마음을 들어봤습니다.

대한적십자사 본사.
이곳에는 헤어진 가족을 살아생전 단 한번이라도 만나보길 소원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산가족들의 간절한 소망이 걸렸습니다.
작은 쪽지 한 장에 담긴 사연은 60년의 그리움이 녹아 있습니다.
최근 13만 여 명의 상봉 신청자 가운데 사망자 수가 생존자 수를 넘어서면서 안타까움이 더해지고 있지만 하지만 이산가족들은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서울 동대문구 우리는 60여 년 전 헤어진 형님을 애타게 찾고 있는 여든의 노신사를 만났습니다.
지금은 황해도. 북한 땅이 되어버린 장단군.
윤일영 할아버지의 고향입니다.
인터뷰> 윤일영(82세)
“(고향 생각이) 많이 나죠, 많이 나요. 왜냐하면 내가 열한 살 때 월남을 했으니까 어릴 때 기억이 생생하죠. 고향에 대한 그 길, 산 모든 것들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죠.”
5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난 윤일영 할아버지에겐 추억으로 남은 형제가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북으로 간 뒤 영영 소식이 끊긴 일곱째 형님입니다.
인터뷰> 윤일영(82세)
“어머니한테 친구들하고 고향에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고향에 갔는데 그 이후에 소식이 끊긴 거예요. 2~3일이면 고향에 다녀올 줄 알았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참 답답하구나 하는 말씀을 (어머니께서) 종종 하셨죠.”
전쟁 통에 행방불명 된 아들을 눈물로 그리워하다 세상을 떠난 어머님.
어딘가에 살아 있다면 생사 확인만이라도 짧지만 목소리만이라도 들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형님을 향한 간절한 그리움으로 오늘도 붙이지 못할 편지를 씁니다.
인터뷰 > 윤일영(82세)
“같이 밤을 주웠던 생각 칡뿌리를 먹던 생각 또는 논 이런 데서 썰매 타고 밀고하던 생각 팽이치고 이런 것도 생각이 나고 상당히 많죠 그리움이라는 게 뇌리에 사라지지 않죠.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까, 라고 얘기하면서 끌어안겠죠.”

언제가 될지 모를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많은 이산가족이 신청을 합니다.
하지만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세상을 떠났다는 통계 앞에 마음이 아파오는데요.
이산가족 문제는 북한과의 줄다리기일 뿐 아니라 ‘시간과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 시급하고 더 어려운데요.
지금 필요한 것은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란 일회성 상봉이라도 자주, 주기적으로 지속해나가는 것으로 한 달에 한두 번씩 안정적으로 이뤄지는 겁니다.
가족 얼굴이라도 보고 싶을 때 확인할 수 있는 화상 상봉도 좋습니다.
이산의 한, 이산가족들의 아픔이 하루 빨리 해소될 수 있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한눈에 보이는 정책>이었습니다.

 

 

( KTV 국민방송 케이블방송, 위성방송 ch164, www.ktv.go.kr )
< ⓒ 한국정책방송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