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메뉴바로가기

배너 닫기
비상진료에 따른 병·의원 이용안내 페이지로 바로가기 의대 증원 필요성과 의사 집단행동 관련 영상보기
본문

KTV 국민방송

반세기 남북회담의 역사 [한 눈에 보이는 정책]

KTV 대한뉴스 월~금요일 19시 00분

반세기 남북회담의 역사 [한 눈에 보이는 정책]

등록일 : 2018.07.05

계속해서 이슈를 알기 쉽고 깊이 있게 들여 다 보는 <한 눈에 보이는 정책> 순서입니다.
1972년 오늘은 남북한이 최초로 평화적 합의문을 만들어 공동 발표한 7.4 남북 공동선언일입니다.
반세기가 지난 올해, 마침내 남과 북은 함께 평화의 길로 나서고 있죠.
그리고 그 사이엔 총 660회나 되는 남북대화가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오늘,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그 길을 되짚어보겠습니다.

남북적십자 서한전달 (대한뉴스 842호 1971년 8월)
“남과 북의 적십자 파견원들이 가족찾기운동의 실현을 위한 두번째 접촉을 판문점에서 가졌습니다. 첫 대면 때 파견됐던 대한적십자사 서무부장 이창렬씨와 섭외부 참사 윤여훈여사는 두번째 파견원으로 8월26일 낮 12시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원회 회의실에 도착했습니다.”
휴전 이후 남북 최초의 만남은 1971년 8월 20일 판문점에서였습니다.
적십자회담의 파견원 접촉으로 이뤄진 이날 대화의 주제, 바로‘이산가족’이었죠.
전쟁은 멎었지만 분단의 비극이 길게 이어지던 70년대, 대화는 이렇게 국민의 염원을 대변하며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곧, 첫 결실이 나타납니다.
그게 7.4 남북공동선언입니다.
7.4 남북공동성명(대한뉴스 887호 1972년 7월)
“사반세기동안 막혀있던 남과 북사이에 대화의 길이 트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자주적인 평화 통일을 추구하는 7개항의 공동성명이 7월4일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발표됐습니다.”

7.4 남북공동성명은 분단 이후 처음 맺어진 남북 간 합의문서입니다.
이 공동성명을 통해 남북은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 ‘통일 3원칙’에 최초 합의합니다.
상설 직통전화가 설치되고 통일문제 해결을 맡을 단체도 구성됩니다.
70년대 남북대화를 만들어낸 원동력은 당시 세계를 강타한 동서 화해무드였습니다.
자연스럽게 한반도의 냉전 종식과 통일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커지게 된 건데요.
하지만 아쉽게도, 냉전의 시대는 우리 국민의 바람만큼 빨리 종식되지 못했습니다.
1973년 8월, 모든 남북대화가 끊기면서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포함한 7.4 공동선언의 실현도 뒤로 미뤄지게 됩니다.

1980년대 중반이 되면 험악해진 남북관계에 또 다시 훈풍이 붑니다.
고향방문단 예술공연단 교환방문 (대한뉴스 1560호 1985년 9월)
“남북한 이산가족 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단이 9월 20일부터 나흘 동안 서울과 평양을 각각 방문했습니다. 1.4후퇴때 헤어졌던 두 아들을 부둥켜안은 아버지는 통곡했습니다. 이번 고향방문에서 우리 측 방문단은 모두 서른다섯 가족이 만났습니다.”
남북을 다시 이어 준 건 이번에도 ‘가족’이었습니다.
전 시대에 못 이룬 이산가족 상봉, 그 꿈은 1985년에 처음 이뤄집니다.

1984년 9월 정부는 북측의 대남 수해물자 제공 제의를 받아들입니다.
남북 사이 첫 ‘인도적’ 지원이 이뤄진 건데요.
그렇게 첫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됩니다.
적십자회담, 경제회담, 체육회담 등이 잇달아 열리고, 남북 예술공연단도 서울과 평양을 오가게 됩니다.
그리고 1990년대.
마침내 세계는 탈냉전의 흐름에 올라탑니다.
1991년엔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이 이뤄집니다.
이어서 다음해인 1992년 2월.
남북의 두 번째 역사적 합의가 등장하죠.
남북합의서 서명 (대한뉴스 1884호 1991년 12월)
“남북한은 제 5차 고위급회담을 통해 1991년 12월 13일 남북사이에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서명하고 이를 공식발표했습니다.
남북 기본합의서는 7.4 남북공동성명을 계승해 상호체제 인정과 협력, 나아가 정전상태를 끝내기 위한 노력을 담았습니다.
한반도를 비핵화하자는 공동선언도 곧이어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1994년 1차 북핵 위기를 극적으로 넘기며, 같은 해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 합의로까지 이어집니다.

하지만 역사엔 늘 굴곡이 있기 마련이죠.
화해와 협력의 물결을 가로막은 건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북한 김일성 주석의 사망 소식이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은 성사를 코앞에 두고 이렇게 물거품이 됩니다.
이때의 충격은 이후 남북 관계를 더 어렵게 만든 요인이 됐는데요.
전문가의 분석 들어보시죠.
인터뷰> 홍민 /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김일성 주석이 생존해있을 때와 김정일 위원장이 본격적으로 집권하는 시기에 남북관계의 큰 구분은 아무래도 북핵문제의 관련 여부가 가장 중요할 것 같습니다. 김영삼 정부가 문민정부로서 상당히 유화적인 형태로 대북정책을 초기에는 펼쳤지만 이후에 북핵문제와 연동이 되면서 사실상 강경일변도의 대북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래서 사실상 남북관계와 북핵문제가 구조적으로 결합되는 시기가 (김일성 주석 사후) 김정은 위원장 들어와서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겠죠.”

한편 곧이어 집권한 김대중 정부는 북핵문제 해결에 일대전환을 약속합니다.
그 결과 마침내 2000년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만나게 됩니다.
최초의 남북정상회담, 키워드는 ‘햇볕정책’이었습니다.
경제협력을 통한 공동번영, 남북 모두 적대적 흡수 통일이 아닌, 평화적이고 점진적인 통일에 힘을 모으자는 것.
이게 <6.15 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이었죠.
그리고 이 실천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집니다.
2007년 10월 4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이의 정상회담이 성사됩니다.
이 만남은 남북정상회담을 정례화하겠다는 2000년 합의에 따른 것이었는데요.
그렇게 맺어진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줄여서 <10.4 선언>은 전 정부의 ‘약속’을 이행하는 구체적 후속조치들을 낳았죠.
10.4 선언을 통해, 6,15 공동선언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법과 제도가 만들어집니다.
서해평화수역 지정, 개성공단 설립 같은 구체적 청사진도 이때 비로소 등장하게 됩니다.

6.15공동 선언 이후 10년간 남북의 역사는 또 멈춰섭니다.
정권 교체 후 남북 간 합의는 표류하거나, 사실상 폐기되기도 했습니다.
정치적 공방과 함께 개성공단이 폐쇄됐고, 여기에 북한의 도발이 더해지면서 남북관계는 경색 일변도를 달렸습니다.
왜였을까요.
간단히 말하면, 상호간의 약속이 완전한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임기 말에 치른 남북회담의 한계는 그만큼 컸던 것이죠.
그 다음은 시청자 여러분께서 알고 계신 그대로입니다.
날선 대립과 불안 속에, 한반도의 2018년이 찾아왔고, 봄이 오기 전 열린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는 대전환에 접어들었습니다.
얼마 전 4.27 판문점 선언에 이은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리에 끝났습니다.
70년을 기다린 한반도의 봄이죠. 그 봄은 어디까지 와 있는 것인지, 이어서 들어보시죠.
인터뷰> 홍민 /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지속적으로 북미가 만나서 대화를 하고 한 쪽에선 남북이 계속 대화를 하고 서로 윈윈하는 게임구도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한국이 향후 해야 될 아주 중요한 역할이라 할 수 있겠죠. 지금 순차적으로 고위급 회담, 장성급 군사회담, 실무급에서 체육교류 민간교류, 이산가족 상봉 이런 방식이 계속 진행이 잘 된다면 순조롭게 이루어진다면 합의내용 하나하나를 실천하는 과정들은 올 하반기까지 잘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남북대화의 역사는 벌써 반세기에 가깝습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는 ‘정례화’라는 수식어가 따랐죠.
그리고 이제 정부는 정상회담의 ‘상시화’를 말하고 있습니다.
48년간 합의해온 자주, 평화, 공존의 원칙, 모든 일의 주어는 남북일 겁니다.
이낙연 국무총리 / 지난달 27일 제주포럼
“지금 막 시작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예전에 생각은 있었더라도 가보지는 못한 길입니다. 한국정부는 지구 최후의 냉전지대 한반도를 세계평화의 발신지로 바꾸고 싶습니다.”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 개혁개방, 이 희망이 실현될 때까지 정부의 역할을 기대합니다.
지금까지 <한눈에 보이는 정책>이었습니다.

 

 

( KTV 국민방송 케이블방송, 위성방송 ch164, www.ktv.go.kr )
< ⓒ 한국정책방송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