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메뉴바로가기

배너 닫기
비상진료에 따른 병·의원 이용안내 페이지로 바로가기 의대 증원 필요성과 의사 집단행동 관련 영상보기
본문

KTV 국민방송

39년 전 민주주의의 함성 [유용화의 오늘의 눈]

KTV 대한뉴스 월~금요일 19시 00분

39년 전 민주주의의 함성 [유용화의 오늘의 눈]

등록일 : 2019.05.20

유용화 앵커>
1980년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우리는 한국민주화 운동의 원천이라고 평가합니다.

그 이유는 광주시민들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폭력적인 군부독재 세력과 당당히 맞서싸웠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금까지도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근간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1961년 5월 16일 박정희소장을 필두로 한 정치군인들은 탱크와 장갑차를 몰고 한강을 건너 청와대에 입성했습니다.

4.19 시민혁명에 의해 탄생한 제2공화국을 총과 칼로 뒤집은 것이죠.

이후 한국사회는 정치군인들이 권력을 장악하는 시대가 열리게 됐습니다.

1972년 유신헌법과 국민과 전 사회를 지배하려고 발호된 초 헌법적인 긴급조치는 군부권위주의 정권의 절정이었습니다.

1979년 10월 궁정동에서 자신의 친구이자 심복이었던- 김재규 중앙정부 부장에 의해 박정희 전대통령은 살해됐습니다.

그러나 박정희가 육성했던 전두환, 노태우, 김복동, 정호영 등 하나회 멤버들은 전방에서 북한과 대치하고 있었던 사단병력을 빼돌려 12.12 친위 쿠테타를 일으킵니다.

결국 80년 민주화의 봄은 신군부 세력에 의해 또다시 좌절될 위기에 처해있었던 것입니다.

5월17일 밤 9시 40분.

기습적인 계엄확대 조치에 가장 거세게 반발한 곳은 광주였습니다.

계엄군들이 광주 시내를 장악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남대생 중심으로 벌어진 시위는 시민들의 참여로 확산됐고, 신군부 집단은 공수부대를 투입하여 무차별 진압에 나서게 됩니다.

그러나 광주시민들의 분노와 저항이 더욱 거세지자. 결국 신군부세력은 시민들을 향해 발포를 감행한 것입니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군인이 오히려 국민을 향해 총을 쏜것입니다.

전두환 신군부집단은 광주에서의 학살로 정권장악과 유지에는 성공했지만, 그 정통성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은 국민을 학살하고 정권 찬탈에 성공한 5공 신군부정권과의 일대 대결이었습니다.

87년 6월 항쟁까지 광주는 민주화 운동의 원천이었고, 민주화 운동을 지켜주는 디딤돌 이었습니다.

87년 호헌을 고집하던 전두환 5공 정권이 국민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하자, 한때 계엄령을 검토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미국과 군 내부의 반발에 부딪혀 결국은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게 됩니다.

그 결정적 이유는 바로 80년 광주의 유혈항쟁이 다시 발생할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5.18 광주는 우리사회에 다시는 군부세력이 부당한 권력을 잡지 못하게 하는 결정적인 쐐기를 박은 역사적인 사건인 것입니다.

광주민주화 운동을 단순히 지역문제로 치환하거나, 폄훼하는 행위는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부정하는 것이자, 현재의 민주주의를 인정하지 않는 사고입니다.

또한 광주는 더 이상의 논쟁거리도 아닙니다.

40여년전 무자비한 신군부 세력에 의해 희생당한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통해 우리가 지금의 민주주의를 향유하고 있음을 감사해야 하는 것이죠.

이번 광주 민주화운동 39주년을 맞아 이제 다시는 불필요한 논란이 없기를 바랍니다.

 

 

( KTV 국민방송 케이블방송, 위성방송 ch164, www.ktv.go.kr )
< ⓒ 한국정책방송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