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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역사 정당 평가에 최선" [오늘의 브리핑]

KTV 대한뉴스 월~금요일 19시 00분

"민주화 역사 정당 평가에 최선" [오늘의 브리핑]

등록일 : 2019.03.18

신경은 앵커>
이낙연 국무총리가 3·15의거 기념식에서 민주화 역사를 더 찾아 기록하고, 정당하게 평가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총리의 기념사 주요 내용, 들어보겠습니다

제59주년 3·15의거 이낙연 총리 기념사
(장소: 창원 3·15아트센터)

1960년 3월 15일, 그날은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과 제5대 부통령을 뽑는 날이었습니다. 선거는 일찍부터 부정으로 치달았습니다. 고등학생들이 먼저 저항했습니다. 2월 28일에는 대구에서, 3월 8일에는 대전에서 고등학생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3월 15일 마산에서 가장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고, 처음으로 유혈의 진압이 빚어졌습니다.

사라진지 28일 만에 한 사람이 돌아왔습니다. 바다에 떠오른 마산상고 신입생 김주열 열사의 처참한 주검은 학생과 시민을 다시 거리로 불러 모았습니다. 군중의 구호는 “이승만 하야”와 “독재 타도”로 바뀌었습니다.

마산은 정권 자체를 심판하고 나섰습니다. 그것은 구호를 넘어 곧 현실이 됐습니다. 4·19혁명으로 권력자는 하야했고, 독재정권은 무너졌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시민에 의해 민주주의가 실현됐습니다.

그 위대한 역사를 결정적으로 촉발한 것이 바로 3·15의거였습니다. 그 당당한 주역이 바로 마산의 보통사람들이었습니다. 교복 입은 학생과 고학생, 공장 노동자, 상인, 구두닦이까지 함께 싸웠습니다. 열 두 분이 목숨을 잃으셨고, 250여 분이 부상하셨습니다.

그분들이 흘리신 피로 우리의 민주화는 시작됐습니다. 그 희생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3·15는 3·15로 끝나지 않습니다. 3·15는 4·19가 됐고, 그 후에도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을 때마다 부활했습니다. 1979년 10월에는 유신독재에 맞서 부마항쟁으로, 1980년 5월에는 신군부의 야욕에 맞서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되살아났습니다. 1987년 6월에는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민주항쟁으로, 2016년 겨울부터는 국정농단을 단죄한 촛불혁명으로 다시 불타올랐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정부는 대한민국 민주화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더 찾아 기록하고, 정당하게 평가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28에서 4·19까지 일련의 민주화운동이 60주년을 맞는 내년을 뜻깊게 기념하도록 미리 준비하겠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와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민주주의를 제도화하고 내실화하도록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습니다.

창원시가 추진하는 민주주의 전당의 건립에 대해서는 다른 지자체들이 추진하는 같은 취지의 사업들과 함께 정부가 관련 지자체들과 협의해 합리적 기준을 만들어 협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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