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메뉴바로가기

오늘 하루 열지 않음

배너 닫기
비상진료에 따른 병·의원 이용안내 페이지로 바로가기 의대 증원 필요성과 의사 집단행동 관련 영상보기
본문

KTV 국민방송

대한늬우스와 함께하는 '리사이틀 인생쇼'-금사향

-인생의 희로애락과 추억이 담긴 대한늬우스와 함께하는 시간.


-기쁠 때 힘이 되고 슬플 때는 위안이 돼주던 그 시절 노래가 있는 시간.


-대한늬우스와 함께하는 리사이틀 인생쇼.

안녕하세요, 저는 김상희입니다.


-안녕하세요, 박성서입니다.


-대한늬우스와 함께하는 리사이틀 인생쇼,

오늘도 그 시절의 이야기를 박찬일악단과 함께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많은 방청객 여러분들, 대단히 고맙습니다.

그런데 과연 오늘 이 쇼에서는 주인공이 누구시려는지 혹시 짐작하시는 분이 계시는지 모르겠어요.

짐작하시겠습니까?


-오늘 아주 멋쟁이, 세월이 지나지 않아도 변하지 않는 분, 그분이 오셨죠.


-그분이 오셨답니다.

어떤 분인지 화면으로 만나보시죠.


-한국전쟁이 할퀴고 간 폐허에 울려퍼지던 '홍콩아가씨'.

지독한 가난과 전쟁의 잔해 속에서 국민의 시름을 달래주었던 노래의 주인공, 금사향.

1950년대 전쟁의 포화 속에서 위문공연장을 찾아 노래했던 열혈 여장부였고 한국 가수 최초로 하이힐을 신었던 멋쟁이였습니다.

'홍콩아가씨'와 함께 그녀를 정상의 가수로 떠오르게 했던 또 하나의 노래 '님 계신 전선'.

전쟁이라는 역경 속에서도 노래를 포기하지 않았던 금사향.

작지만 당찬 그녀의 모습을 온국민은 사랑했습니다.

세월을 잊은 듯 여전히 낭랑한 목소리의 가수 금사향의 삶과 노래를 함께 만나보겠습니다.


-오늘 노래 들으셔서 아시겠지만 우리 금사향 선생님의 목소리에 대해서 제가 한번 여쭤봤습니다, 방청객 여러분들께.

아까 뭐라고 그러셨어요?


-은쟁반에...


-은쟁반에 뭐가 굴러가요?

옥이 굴러간대요.

또 어떤 남자 선생님은 뭐라고 그러셨어요?

꾀꼬리?

꾀꼬리 같다고.

이런 찬사를 듣는데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쎄요.

저는 그냥 가죽피리 소리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가죽피리라고 그러셨습니다.


-버들피리, 꽃피리, 풀피리가 있거든요.

그런데 이건 가죽 속에 있으니까 도둑도 안 맞고 좋죠.


-'홍콩아가씨'죠, 조금 아까 했던 노래?


-네.


-이건 제가 압니다.


별...

그런데 소리가...

해 보려고 했더니...

이 노래가 얼마나 유명했습니까,

박성서 씨?


-'홍콩아가씨'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도에 나왔는데요.

당시에는 국민들이 전쟁으로 받은 상처, 아픔이 컸을 때죠.

바로 이 노래의 경쾌한 멜로디 그리고 금사향 선생님의 밝은 목소리로 인해서 당시에 국민들이 전쟁의 아픔을 잊게 해 준 그런 노래였죠.

그때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여전히 무대에 서시면서 여전히 홍콩아가씨입니다.


-그런데 홍콩은 가보셨어요?


-못 가봤어요.

'페르시아 왕자'도 페르시아 못 가보고.


-페르시아 왕자는 못 가볼 만해요.

그런데 홍콩은 바로 옆인데...


-희한해요.

똑같은 지역에 살아도 성남시 못 가본 사람 있고 강남시 사는 사람 있잖아요.


-알겠습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맛깔스럽게 '홍콩아가씨'를 부르는 거 보면 역시 가수는 타고난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는데 데뷔하신 지가 얼마 되시는지 그거 기억하실까요?


-그러니까 지금 여든다섯인데 열아홉 살에 나왔으니까 66년 전쯤 될 거예요, 숫자 뽑으면.


-66년 전 그러면 가늠이 안 돼요, 잘.

그때 어떡하다가 데뷔를 하시게 됐는지.


-지금 8도라고 하죠.

조선 13도에서 5000명 중에 10명을 뽑았어요.

그때는 등수에 안 들어도 된다고 그랬는데.


-노래자랑에 나가서 그러면 5000명 중에 뽑힌 거군요.


-네, 뽑혔어요.

그때는 음향시스템이 나쁘기 때문에 발음이 정확해야 돼.

금년 솥장사 헛 솥장사.


-해 보세요.

금년 솥장사 헛 솥장사.

이게 어디 되나?

선생님, 한번 해 보세요.


-그러니까 금년 솥장사 헛 솥장사인데 전부 헛조장사라고 해요.

그 사람들 떨어졌어.


-그러니까 가수가 되기 위해서 그런 시험도 봤다고요?


-예, 그걸 했어요.


-그걸 어떻게 해요?

우리가 아나운서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닌데.


-그런데 그때는 가수시험을 그렇게 했어요.


-평상시에 노래를 좋아하셨군요.


-좋아했어요.

그러니까 내가 처음에 말 배울 때 엄마, 아빠보다 강남달이 밝아서 달이 달이.

그거 먼저 했대요.

그렇게 하고 맨땅에서 맨발로 노래를 안 하고 신문지에 프린트 안 된 하얀 것을 이만큼 찢어서 2cm 정도 찢어놓고 그 위에 발을 놓으면 하나도 안 보이는데 거기서 달이 달이, 그랬대요.


-그러니까 온 집안이 다 좋아하고 동네가 다 좋아하고.

고우시잖아요.

옷도 얼마나 예쁘게.

정말로 우리 시집 가기 전에 이렇게 입었었잖아요.

그래서 참 보면서 옆에서 참 고우시다 그러는데 요즘에 여러분들은 킬힐, 하이힐이 이렇게 높잖아요.

그래서 그거 신고 다니는 사람 많은데 그 원조가 바로 금사향 선생님이세요.


-이게 금사향 선생님이 우리나라 최초로 하이힐 신었던 그 모습입니다.


-전쟁 때문에 무대에 서게 되니까 키는 작고 나가기는 싫은데 그래서 할 수 없이 치마를 10cm 길게 하고 하이힐을 8cm 높게 해서 감춰서 홀림주식회사로 나왔어요.


-그런데 그 높은 신발이 그때는 만들기도 힘들었을 텐데.


-그러니까 만들었어요.

시공관 앞에 홍콩양화점이라고 있어요.

홍콩하고 아주 인연이 있는데 그런데 그 당시 멋쟁이가 누구냐면 김연실 영화선생님이 하셨어요.

그분이 이 눈썹도 태초에 하셨어요.

그때 우리 머리 긴 아가씨 머리, 한 20cm 정도 되는 머리를 잘라서 까만 미싱실에 이걸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하면.


-이걸 만드셨다고요, 손으로?


-예, 다 만들어서 아교풀 있죠.

이렇게 긴 것.

그거 사각형으로 된 거 이렇게 해서 침 칠해가지고 딱 발라가지고 이렇게 해가지고 딱 붙으면 붙어요.

그러면 눈이 조금 커 보여요.


-우리 금사향 선생님하고 말씀하려면 전설따라 삼천리, 이게 아니고 그냥 여기 앉아서 1940년부터 지금까지 세세곳곳이 다 나오는 것 같은데 또 그 시대에 우리 대한늬우스가 가지고 있는 그 시절의 이야기를 담은 화면이 있습니다.

그걸 우리 함께 보는 시간 마련을 하죠.

함께 들어가시죠.


-태극기 흔들면서 님을 보낸 새벽 정거장.

그때는 만세소리 하늘 높이 메아리쳐서 조국의 부름 받아 가시는 님이기에 눈물을 감추고 돌아서서 무운장구 빌었다오.

그날의 님의 모습 눈에 삼삼 보이는데 지금은 어느 전선 어느 곳에서 용감하게 싸우신지요.

님이여, 건강하소서.


-그런데 '홍콩아가씨'라는 노래가 얼마나 대단히 인기를 끌었습니까?


-당시에 레코드사가 돈을 자루에 담아서 이렇게 했다, 이런 얘기도 있고요.

그 당시에 전쟁이 끝나면서 외국 문물이 부산이나 마산으로 들어오죠.

그때 우리나라에도 사교춤 열풍이 붑니다.

그러면서 사회도 밝게 만드는 그런 역할을 했죠.


-그러니 그때 얼마나 바쁘셨어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돈 벌기 위해서 다른 사업을 하는데 저는 노래하는데 시간이 없어가지고 다른 직업을 못 가져봤어요.

이제 늙었으니까 풀빵장사 해야죠.


-금사향 선생님, 이 사진 기억나시죠?

이 사진...


-좀 보여주세요.


-이게 제주도 육군훈련소의 모슬포에 따로 위문단만 사는 데가 있었어요.

그래서 여기 유호 선생님이 '삼다도소식' 가사도 쓰고.


-극작가 유호 선생님?


-네.


-그런데 말이죠,

그런데 지금 전쟁중이잖아요.

전쟁중에 무슨 레코딩을 합니까?


-부산에도 녹음실이 없기 때문에 대구에 이병주 선생님이 작곡을 하시는 선생님이에요.

악기점도 하고 송죽극장 앞에.

그래서 녹음실이 없으니까 그 악기를 다른 데다 옮기고 방음시설이 안 돼 있으니까 그때는 국방색 담요를 쳤어요.

그렇게 하고 두부장사 소리 안 나고 전차 땡땡소리 안 나고 자동차 브레이크 소리 안 나고.

새벽 4시 반에 자다가도 목소리 안 쉰 사람을 뽑았어요.

그래서 거기에 제가 뽑혔어요.


-그렇게 해서 녹음이 된 거군요.


-그럼요.


-그때 만일 무슨 두부장사 소리나

술취한 사람의 소리나 이런 게 들어가면 또 못 하는 거고.


-옛날에 어느 선배님이 녹음을 하다가 방귀를 마지막에 뽕 하고 뀌었더니 그게 나오더래요.


-그리고 이제 '님 계신 전선'이 또 히트를 하네요.


-또 히트를 쳤어요.

그러니까 제가 제시간에 밥을 못 먹었어요.

새벽 4시 반이면 화장했어요.

왜냐하면 지프차 타고 전쟁터 가려면 지프차 이렇게 하면 눈썹 그리려면 햇빛이 쨍쨍 되잖아.

그러니까 4시 반에 그려야 정상으로 그려지죠.

안개비가 오면 여기 풀로 붙였던 게 여기 똑 떨어져요.

그러면 앞에 사병들이 웃어요.

그래도 열심히 부르고 그때는 스탠드마이크니까 얼굴 이만하게 가린 거니까 약간 내리고 하는데 비가 오니까 이건 떨어지지, 이것 때문에 전기가 오지.

그래서 이걸로 붙들고 노래했어요, 결사적으로.

군대 트럭을 2개를 뒤꽁무니를 내려서 붙이면 군대 트럭 2개니까 거기서 노래 실컷 해요.


-아니, 그러니까 무대에 서서 악단하고 노래하고 지금 이런 게 아니고 무대가 트럭이에요?


-트럭으로 했어요.

그 형편에 따라서.

형편에 따라서.


-그리고 이런 라이트가 아니고 지프차의 헤드라이트.


-지프차 헤드라이트 비치면 얼굴만 보이면 되잖아요.

전쟁터인데 이거다 저거다 말씀 마시고죠.


-아니, 그렇게 인기가 높으셨으니 진짜 밥 먹을 시간도 없고 잠잘 시간도 없고.


-선생님도 군번 없는 용사로 전쟁에 참여하신 거군요.


-그럼요.


-그 당시에 먹물도장을 찍었다는 얘기가 있는데.


-먹물도장?


-까만 도장.


-그게 뭡니까?


-목숨 잃어도 보상 안 받고 나는 전쟁터에 나가겠다 하는 그게 있었어요.


-아니, 지금 가수잖아요.


-가수인데도 그랬어요.

군인이나 똑같아요, 우리는 그때는.


-그러니까 그때는 군인 대우를 받으시는 거네요.


-그러니까 그 당시에 연예인들도 다 군에 참여하는데 육군연예대, 군예대라는 이름으로 참여를 하시면서.


-그러니까 우리 선생님께서도...


-전쟁 끝나도록 우리는 제주도에서 끝났어요.


-군복도 입고 모자도 쓰고 계급도 있었습니까?


-계급장은 없죠.


-말씀하시는 거 들으니까 노래를...


-철이 안 들었죠?


-아니요, 아니요.


-철들면 무거워.

양은냄비가 가벼워.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저는 양은냄비 하렵니다.

아니, 그런데 아무리 이렇게 어려웠을 때 얘기를 하셔도 우리 금사향 선생님이 하시면 거기에 웃음이 나오고 또 생활이 나오고.

그런데 그 생활이 적나라하게 나오잖아요.

그런 것 보면서 정말로 우리 연예인들이 국가를 위해서 이렇게 큰일을 했구나.

그걸 우리가 잘 모르잖아요, 요즘 사람들이 잘 모른단 말이죠.


-그렇죠.

그러니까 그때는 군대 갈 적에 앞에 갈 때 지금 위문단 식구가 27명이다 그러면 저쪽에서 오늘은 오리 잡겠습니다 오버, 그러고 끝나요.

가면 오리 잡아서 우리 오리 다리도 뜯어먹고 꽁치된장찌개 먹어요.


-선생님, 그런 즐거움도 있으셨잖습니까?

그러니까 하지.


-그럼요, 공짜는 절대 없어요.


-옆에 뫼시고 앉아서 얘기하면 그냥 웃음이 저절로 나와서.

금사향, 이건 얼마나 예쁜 이름이에요.

누가 지어주셨습니까?

본명이?


-저는 최영필이에요.


-아이고.


-남자 이름 같아가지고.

우리 외할아버님이 양반이셨기 때문에 여자지만 꽃부리 '영'자에다가 백성이 활로서 임금님 보필한다고 영필이라고 그러니까.

제가 총은 못 쏘니까 노래로 쏜 것 같아, 이제 생각하니까.

그랬는데 극작가 고려성 선생님이, 반야월 선생님이 작사가로서 반야월인데 가수 이름으로서는 진방남, 진나라에 향기나는 남자라고 해서 진방남이라고 지어주시고 저한테는 가야금, 거문고 실이 울린다고 해서 거문고 '금'자, 실 '사'자, 울릴 '향'자.

교향악이라는 그걸 했는데 사람들이 귀로 들으면 여자니까 향기 '향'자를 써요.

그래도 금사향이면 되죠.


-이렇게 지어지셨군요.

그래서인지 이름하고 똑같으신 것 같아요.


-노래 부르는 사람은 행복한 거예요.

노래 많이 부르세요.

그러니까 노래의 나의 생명이고 마이크는 나의 짝사랑이고 5000만 동포는 박수 치고 좋아하시니까 나의 애인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내주 인생쇼의 사회자가 바뀔 것 같습니다.

우리 금사향 선생님으로 바뀔 것 같아서.

그런데 요즘에 금사향 선생님은 어떻게 생활하시는지 저희가 한번 카메라 가지고 찾아뵀거든요.

여러분, 한번 같이 보시죠.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는 금사향 씨의 보금자리.

그녀의 삶을 대변하듯

많은 이야기로 장식돼 있었습니다.

특히 곳곳에 자리한 태극기가 인상적이었는데요.


-남산방송 우리 한창 히트칠 적에 저 끝에 '알뜰한 당신' 황금심 선배님.

그 다음에 백난아 선배님, 또 그 다음에 한정무 씨.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고춘자 씨.

여기 다 스타예요.

그런데 저분이 다 가셨어.

네 분이 가시고 나만 숨쉬는데 호적에 없는 가족 아니에요.

우리 연예인이니까.

한솥의 밥 먹잖아요.

지방공연 하면 보름씩, 20일씩.

다섯 사람이 참 좋았어요.


-고왔던 그 시절의 모습이 어느덧 향수가 되어버린 지금 마음만은 변치 않았는데요.

언제 어디서든 그녀에게 노래는 삶의 활력소입니다.

금사향 씨를 기다리고 있는 듯 한들거리는 코스모스.

왠지 반가운 만남을 기대해 봅니다.

뜻하지 않았던 지인과의 만남은 오붓하니 이야기꽃을 피우기 마련입니다.


-애틋한 지인과 특별한 장소에 가기 위해 곱게 차려입은 한복.

두 손을 꼭 잡고 추억의 장소로 향했습니다.


-이게 원래는 3절까지 있었는데.

화랑의 몸이신 님이 떠난 새벽정거장 그랬는데 진짜 따지고 보면 잘 살았어.


-내가 만날 고민해서 잠 못 자면 감사하기만 하라고 만날 야단치지, 도로.

야단치는 사람은 나밖에 없지.


-가수 금사향 씨에게 유일한 노래비, 님 계신 전선.

세월은 전쟁의 아픔을 잊게 할 만큼 훌쩍 흐르고 시대를 위로했던 그 노래는 이제 기록이 되었습니다.


-낭랑한 목소리로 시대의 아픔을 위로했던 가수, 금사향.

삶의 시련 속에서 웃음과 노래를 놓지 않았던 그녀의 밝은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었습니다.


-노래비까지 구경을 했는데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선생님은 정말 기억력이 뛰어나시고 구전가요, 그런 노래들을 다시 채록해서 보존하는 그런 일을 하고 계신데.


-멜로디는 어떻게 됩니까?


-여기 계신 분도 지금 신랑이 다른 여자한테 반해서 가면 생일잔치 때 받는 우산, 장례식 때 공짜로 받는 우산 줄 사람 하나도 없어.

그런데 그 시절에는 그래가지고 2절은 곡절은 노래 안 부를게요.

웃겨놓고 가셔도 안타까운데 매정하게 울려놓고 덧없이 속여놓고 70리 구불고개 떠나가는 님이시여, 한사코 가는 길이 님의 행복이라면 가시는 그 길 앞에 피눈물을 뿌리죠.

옛날 여성 심리가 그랬어요.


-아니, 그 어려운 가사를 좔좔좔 해 놓고 난 다음에 헤헤헤 웃으시고...그러니 예전의 그 여인들의 품새가 어느 정도 마음이 넉넉했는지, 아무리 자기를 버리고 가더라도 혹시나 그 버리고 가는 남편 비 맞을까 봐 치마 갖다 주면서 비 맞고 가지 말라고.


-우산 대신 받으라고.

그리고 또 짜서 받고 가래.


-별걸 다 가르쳐줘, 별걸.


-제목이... 


-몰라.

제목도 몰라요.


-오히려 그 노래는 금사향 선생님밖에 안 계신 것 같아요.


-하여튼간에 정말 선생님 옆에서 뵙기도 좋고. 여러분, 큰 박수.

노래로 한번 청하겠습니다.


-'님 계신 전선', 지금 저희들도 그 역사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이 노래를 들어서 그런지 가슴이 짠하고 그런데.


-항상 이 노래의 주인공이 돼야 되니까 항상 그때 전쟁 때 생각이 나고 눈물이 아른거려요.


-그 당시에 군가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군대 가는 용사들한테 힘과 용기를 주는 노래, 또 하나는 군대에 가족을 떠나보내는 가족들의 마음을 담은 노래.

하지만 '님 계신 전선'은 바로 우리의 아들이자 오빠이자 동생인 가족들이 군대 가는 마음을 담았기 때문에 그 당시에 전방과 후방에 이 '님 계신 전선'이 그야말로 태극기와 함께 물결을 나부꼈고요.

말 그대로 열아홉 꽃다운 나이에 데뷔하셔서 66년이 지났고 지금은 우리나라 가요계 최고 어른이 되셨습니다.

후배들한테 하시고 싶으신 말씀도 있으실 것 같은데요.


-노래는 온국민의 정신치료제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가장 사명감을 가지고 있으니까 자기 자신에 대한 긍지를 가져야 돼요.

건강이 최고고 돈은 죽었을 때는 종이조각이에요.

살았을 때는 연락선이고.

그리고 사랑은 형체도 없고 색깔도 없고 무게도 없지만 사랑하는 이 분위기는 따따봉이에요.


-아니,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깜짝깜짝깜짝 놀라고 앉아 있거든요.

오늘 이렇게 우리 대한늬우스와 함께하는 리사이틀 인생쇼 쭉 함께하셨는데 오늘 선생님 기분이 어떠십니까?


-오래 살기 잘했다고 생각해요.

이 순간 여러분이 나만 쳐다보잖아요, 늙은이인데.

그러니까 그 이상 더 바람이 없어요.

그렇죠? 

못생겼거나 말았거나 난쟁이 똥자루라고 해도.

난쟁이 똥자루나 키다리 똥자루나 20cm는 똑같아요.


-오늘 우리 금사향 선생님하고 함께한 시간, 옆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 또 옆에서 노래하시는 모습 이렇게 지켜보면서 저 선생님이 지금까지 저렇게 건강하고 예쁘신 것은 그냥 잘 주변을 맑게 건강하게 만들어주시고 늘 조그마한 일에도 소녀같이 키드득키드득 웃으시는 그 웃음 때문에 이렇게 건강하고 젊으신 게 아닌가 싶어서 오래 오래 우리 후배가수들 옆에서 또 우리 국민 옆에서 노래를 계속 불러주시면서 건강하시기를 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나는 무덤가의 할미꽃인데 할미꽃을 이렇게 바라다보니까 내가 얼마나 살 맛이 나겠어요.

이 순간이 천국 아니에요.

제가 생각해 보니까 희망은 천국이에요.

그러니까 항상 희망만 생각하시면 그것이 천국이고 극락이에요.

믿음에 따라서 불리는 말이 조금 다르지만.

고맙습니다. 

이번에는 '소녀의 꿈' 부를게요.

고맙습니다.

가사 들으세요.

이건 아름다워요, 가사가.



(KTV 한국정책방송 케이블방송, 위성방송 ch164, www.ktv.go.kr )
< ⓒ 한국정책방송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