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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포엠 한국 100경 월요일 17시 30분

강물 따라 흐르는 곰삭은 맛 - 영산강

회차 : 84회 방송일 : 2011.11.04 재생시간 : 27:37

-아흔아홉 굽이 영산강 물길 따라 홍어는 곰삭은 맛을 내며 익어가고.

강이 만들어준 풍요 속에 흥겨운 소리가 멋들어진다.

전남 담양에서 시작해 목포까지 이어지는 영산강은 남도에서 시작해 남도에서 끝이 나는

남도의 젖줄이다.

그 물줄기의 시작은 담양 추월산 계곡에서 시작된다.

용이 꿈틀거리며 지나간 듯 홈이 파진 용소.

시원한 폭포수가 흐르는 이곳의 물은 영산강의 시작이 되어 여러 하천과 합류하며 남서쪽으로 흘러간다.

담양에서 시작된 영산강은 광주를 거쳐 나주로 흘러든다.

나주에 이른 영산강은 넓은 평야를 만들었고 이를 바탕으로 나주는 오랫동안 전라도의 중심지였다.

전라도라는 말도 전주와 나주의 앞글자를 따서 만들어졌다.

늦가을 들녘에는 막바지 추수가 한창이다.

비옥한 옥토와 영산강을 타고 온 바닷바람을 맞으며 쌀알은 알차게 여물었다.

넓었던 강유역은 지금은 논이 되어 이곳 사람들에게 풍요를 선물한다.


-열심히 일한 보람을 느끼는 계절.

올해 농사는 어떨까.


-전남 제일의 곡창지대 나주평야의 풍년은 곧 우리나라의 풍년이었다.

곡식이 잘 자랄 수 있게 땅을 적시는 영산강은 오늘도 말없이 흐른다.

넓은 평야가 있는 풍요의 땅에는 오랜 역사가 있다.

영산강을 끼고 펼쳐진 평야지대 위 봉긋 솟아오른 봉분들이 마치 신라의 고도 경주를 보는 것 같다.

형태가 조금씩 다른 독특한 무덤들은 서기 300년경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이곳에 마한의 독자적인 세력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당시 그 세력은 어느 정도였을까.

마한의 전통방식인 대형 옹관묘에는 이 지역의 지배세력이 사용했으리라 추측되는 고대유물이 함께 출토됐다.

시신을 매장했던 대형 옹관과 금으로 만든 신발 그리고 당시 최고권력자가 썼을 금동관 등이 출토됐는데.

이는 반남고분군 중 가장 큰 고분인 신촌리 9호분에서 나온 것이다.

마한시대 역사가 숨어 있는 유적지.

역사는 그렇게 세월과 함께 흘러간다.

한때 영산강은 대형 고깃배들이 오가던 곳이다.

더 이상 배가 들어오지 않는 영산포 포구에는 등대 하나가 오롯이 서 있다.

등대의 역할도 했지만 빈번하게 범람하던 영산강의 수위를 측정하기 위해 1915년에 만들어졌다.

내륙의 하천에 만들어진 것으로는 국내 유일의 등대인 영산포등대는 화려한 기억들을 간직한 채 묵묵히 영산강을 바라보고 있다.

바다와 육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던 영산포구는 불과 5, 60년 전까지만 해도 영산강 물길 따라 남도의 모든 조세들이 모였던 남도 물류의 집산지였다.

지금은 관광선만이 오가고 있지만 영산강 하구둑이 만들어지기 전인 1977년까지 배가 드나들었다.

배가 드나들 당시 흑산도에서 영산강을 타고 홍어를 싣고 올라오는 배는 보통 보름이 걸려야 나주에 도착했고 그 사이 홍어는 삭혀져 있었다.

지금도 홍어는 이곳 나주의 명물이다.꼬리부분이 세 개로 나뉜 수컷과 하나뿐인 암컷.

과연 그 맛은 어떻게 다를까.


-이곳에는 대를 이어 홍어의 맛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어머니의 뒤를 잇는 아들.

50년 경력의 어머니가 보기에 아직은 미덥지 않은 모양이다.


-영산포 토박이인 어머니는 이곳의 산증인이다.


-요즘 국산 홍어는 따로 표시가 되어 있다.


-홍어를 먹을 때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부위는 따로 있다.


-홍어는 보통 열흘 전후를 삭히는데 기간에 따라 맛이 다르다.

홍어 하면 돼지고기, 김치와 함께 삼합이 유명하지만 이곳에서는 보통 김치와 함께 회를 주로 먹는다.

전라도 일대에서는 홍어 없는 잔치는 잔치가 아니라 할 정도로 대접받는 생선이다.

특히 영산포 사람들의 홍어에 대한 애정은 대단하다.


-혀와 입, 코와 눈 모든 오감을 자극하는 맛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이다.


-홍어배는 더 이상 들어오지 않지만 곰삭은 맛은 그대로 남아 있다.

영산포에서 10여 킬로미터를 내려오다 보면 수려한 절벽 위에 자리잡은 정자 하나.

영산강을 보기에 제일 전망이 좋다는 석관정이다.

강은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흘러간다.

강물 위에 미끄러지듯 배가 다가온다.

1977년 영산포에서 마지막 돛을 올렸던 황포돛배가 30여 년 만에 부활한 것이다.

황포돛배는 밀물 때 배를 움직여 썰물 때 바람의 힘으로 물길을 따라 내려가던 돛단배를 말한다.

황포돛배는 지금 유람선으로 이용되고 있다.

배에서 보는 풍경을 사진에 담는 사람들.

남도의 강변을 따라 거슬러 오르며 석관정에서 공산면 다야뜰까지 왕복 6km 구간을 3, 40분 간격으로 운행하고 있는 황포돛배는 나들이객들에게 인기다.

강 위에서 바라본 석관정은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바위에 선명하게 남겨진 검은색은 바닷물이 이곳까지 차올랐었다는 증표다.

영산포 상류 25km 되는 지점까지 바닷물이 드나들며 바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강.

그 옛날 영산강의 배 또한 이렇게 오갔을 것이다.

영산강이 주는 풍요에 이곳 사람들은 여유로운 문화를 만들며 살아갔으니 저 멀리서 시원한 판소리 한대목이 들려온다.


-나주를 지난 영산강은 함평으로 이어진다.

영산강 지류의 하나인 고막천.

그 위에는 보물로 지정된 석교가 있는데 1273년 고려시대 무안 법천사의 도승 고막대사가 도술로 이 다리를 놓았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길이 20m, 높이 2.5m의 이 석교는 우리나라에서 원형을 간직하고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다리로서 오랜 세월의 흔적이 잔뜩 묻어 있다.

계절의 오고감을 강물은 알까.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마라.

강물은 누구와도 다투지 않고 제 갈 길을 간다.

고막천은 다시 영산강으로 이어진다.

조선시대 전라도 수군 지휘본부가 자리했던 곳에 옛 나루터는 없고 그 자리만 남아 있다.

동강교 다리 아래 있는 사포나루터.

다리는 강을 가르지만 물은 강을 가르지 않는다.

가는 사람 오는 사람 막지 않는 강.

그러나 배는 묶여 오고가지 못한 지 오래.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만들어진 논.

삼베처럼 거친 물결로 남도길을 따라 흐르던 영산강은 어느덧 황토골 무안에 다다른다.

영산강물이 S자 모양으로 휘돌아 가는 곳.

무안 느러지강변.

영산강이 가장 굽어진 곳이라 하여 이곳을 곡강이라고 부른다.

느러지에서 약 4km 떨어진 곳에 가면 정자를 하나 만날 수 있다.

1630년에 지어진 식영정은 영산강과 주변의 경관과 어울려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던 곳으로 현재의 건물은 1900년대 초반에 중건했다.

담양 추월산에서 시작해 광주, 나주, 함평, 무안의 들녘을 넉넉하게 달려온 영산강은 이제 마침표를 찍는 곳으로 향한다.

영산강 하구에 건설된 방조제 영산강 하구언.

영산강이 자주 범람하면서 농경지에 피해를 주자 이를 막기 위해 지난 1981년 건설했다.

영산강 하구언을 마주하고 있는 곳에 자연이 만든 특이한 조각품 갓바위가 있다.

두 개의 바위 중 큰 바위를 아버지바위, 작은 바위를 아들바위라 부르는데.

여기에는 병든 아버지를 위해 효심을 다했던 아들의 전설이 전해 온다.

영산강 하구의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수많은 세월 파도와 해류에 의해 바위가 침식되며 생겨난 갓바위.

바위에 선명하게 새겨진 검은 줄은 지난 세월의 흔적을 말해 준다.

기나긴 세월 흐르고 흘러 내게도 오고 네게도 가고 바다까지 흘러가는 영산강.

강물 따라 흐르던 곰삭은 맛은 이제 더 큰 세상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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