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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삶의 '희망의 끈' 아버지. 서진규 희망연구소 소장 - 휴먼토크 『내 마음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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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2867
등록일 : 2009.08.05 15:23

삶의 '희망의 끈' 아버지
-서진규 희망연구소 소장-

- 휴먼토크 『내 마음의 고백』8월 7일(금) 저녁 8시 40분 방송 -


 □ KTV 한국정책방송원(원장 손형기)은 이 시대, 희미해져가는 ‘인정(人情)’의 의미를 되새기고, 국민에게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휴먼토크내 마음의 고백』을 매주 금요일, 저녁 8시 40분부터 방영한다. 이번 주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그녀가 체험했던 '희망의 증거'를 전하고 있는 서진규 희망연구소 소장이 출연해 그리운 아버지에 대해 고백한다.


       


□ 가난한 엿장수의 셋째 딸로 태어난 서진규 소장, 남아선호가 심했던 어머니에게 구박을 받았고 언니가 시집간 후로는 모든 집안일까지 열세 살인 그녀 몫이 되었다.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 위해 1971년,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순탄치 못했고 미 육군에 입대, 소령으로 전역한 그녀는 2006년, 하버드대 박사학위를 받았다.

 

□ 이 밖에도 <바보사랑, 더 사랑하겠습니다>에서는 경기도 포천시의 식당 '장군집'의   주인인 김성진, 엄미자 부부에게는 30여명의 아들, 딸들이 있다. 부모가 없거나 사정이 어려워 맡겨진 아이들. 그들과 함께 사랑의 보금자리를 꾸려갈 수 있도록,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 준 후원자에게 감사의 고백을 전한다.


이 보도자료와 관련하여 보다 자세한 내용이나 취재를 원하시면

KTV 방송제작 1 과 추동진PD(☎ 02-3450-2248)에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첨부1.


시골 엿장수 딸에서 하버드대 박사로!


 □ 시골 가난한 엿장수의 딸에서 하버드대 박사가 되기까지, 연이은 시련들을 극복하고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된 서진규. 그녀의 삶은 절망에 빠진 수많은 사람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고 있다. 차별이 심했던 어머니에게 아들이 아닌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구박을 받고 자란 서진규. 게다가 언니가 시집을 간 후로는 서진규. 오빠랑 동생도 있는데 왜 나한테만 그러느냐고 어머니에게 따지기라도 하는 날이면, '가시나'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며 혼쭐이 날 뿐이었다. 어머니의 차별이 참기 어려워 몇 번이나 가출을 생각했던 그때, 그녀가 차마 행동에 옮길 수 없었던 이유는 아버지 때문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서진규를 특히 예뻐하시던 아버지. 어머니가 구박할 때면, "가시나가 우째서, 이쁘기만 하구먼." 하고 그녀의 편을 들어주시곤 했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도 그녀의 독립 의지를 막지 못했다. 어머니에 대한 미움과 분노는 서진규에게 여자도 성공할 수 있다는 강렬한 오기로 발동했다. 반드시 성공해서 여자도 출세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1971년, 주변의 우려와 만류에도 삶을 개척하기 위해 단신으로 미국으로 떠난 그녀. 행복한 삶을 기대했지만, 사랑 하나만 믿고 결혼한 남편은 폭력을 일삼았다. 모욕감을 견디지 못하고 이혼 대신 선택한 것은 미군 자원입대였다. 탈영병사의 심정이 이해가 갈 만큼 모진 훈련이었지만, 서진규는 죽을힘을 다해 버텨냈고 진급을 거듭해 소령으로 전역하였다. 대학 졸업 후 도전한 하버드대학원에서 2006년에는 당당히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긍정의 힘으로 삶을 개척해온 서진규. 하지만 아직도 그녀의 가슴 한 편에는 아버지에 대한 아픔의 기억이 자리 잡고 있다.


"가시나가 우째서, 이쁘기만 하구먼..."


□ 1989년 여름, 미 국방언어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부모님을 모시고 캘리포니아로 왔던 서진규. 그런데 아버지의 행동이 이상했다. 평소 잘 다니시던 친구 집에 갔다가 저녁 늦게야 겨우 집을 찾아오는가 하면, 밤에 화장실에 갔다가 방을 찾지 못하기도 했다. 급기야 큰 교통사고를 낼 뻔해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을 갔는데 검사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이미 뇌까지 암세포가 전이 된 폐암 말기였던 것이다. 한국으로 모시고 가려고 아파트 계단을 내려오는데 두려움에 떨며 계단에서 발을 떼지 못하던 아버지. 서진규는 그날 생전 처음으로 아버지를 업었다. 어린 애처럼 가벼운 아버지를 업고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던 딸. 그렇게 아버지를 보낸 것이 생전에 본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한국에 도착해 2주일도 채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한국에 함께 가지 않았던 것이 평생의 후회로 남고 말았다. 다정한 목소리로 딸 이름을 부르던 아버지, 서진규는 지금도 아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아버지의 '희망의 증거'였던 딸, 서진규가 아버지께 드리는 애틋한 고백을 휴먼토크『내 마음의 고백』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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