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영산포 뱃길따라 장날이 시작되네, 나주시>
-가을이다.
추수가 끝난 가을이다.
먹는 배, 그리고 영산포를 떠다니는 타는 배.
나주에는 두 가지 배가 있다.
홍어.
그리고 우리의 장날이 있게 했던 그 시작.
나주다.
세상 모든 곳에는 장터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장터에는 5일이라는 신비롭고도 현명한 오일장이라는 것도 있었다.
알자고, 그걸 알아야만 한다고 나주는 말한다.
영산포 뱃길따라 맏고을 첫 장날 나주시.
100여 개가 훌쩍 넘는 전국의 장터 기록을 다 남기고 싶다.
다 담을 수 없다면 지퍼라도 두어 전하고 싶다.
-나주를 보면
우리나라 장터의 구조가 보인다.
장날이 시작된 원형이 있기 때문이다.
-관청가라 함은 행정을 맡던 관아 아문이 있던 영내를 말한다.
여기가 그 지역이다.
예전 나주의 오일장에서 상인과 서민을 위한 국밥요리가 등장하였다.
소의 내장 가운데 맛이 좋다는 곤자소니, 창자 끝에 달린 기름기가 많은 부위다.
그것을 푹 고아서 만드니 쇠고기국밥이다.
나주곰탕으로 불린다.
-나주곰탕의 국물은 다른 곰탕과 다르다.
고기를 삶아 만든 국물이다.
그에 국물이 맑다.
사태와 양지머리는 따로 삶아 고기를 결대로 찢어 내놓는다.
나주목사고을시장.
이곳을 관청가의 장터라고 해 두자.
나주 중심에 있는 장터.
나주목사고을시장에는 4일, 9일 열리는 오일장과 항상 서는 상설장.
아니, 이곳에서는 매일장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두 종류의 장이 같이 붙어 있다.
여기는 목사골시장 동쪽의 오일장이다.
-고풍스러운 나주에 앞선 장바람이 일고 있었다.
수없이 다닌 장터.
그곳들에서 나온 정보.
-여기는 목사골시장 서쪽의 매일시장이다.
대형마트의 내부처럼 상큼한 배열과 가격표, 그것이 자랑이다.
-나주상인회의 노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남평장.
하루에 3000가마니의 쌀이 거래되던 싸전으로 유명하였으나 현재는 그 이름 대신 명예의 장터, 오가는 이를 쉬게 하는 터, 그게 좋았다.
-광주와 가까워 옛날에는 광주 사람도 많이 이용했는데 지금은 인근 화순군 사람들이 더 많이 온단다.
목소리 반뼘쯤 더 올리시죠.
잘하면 승산 있는 싸움이거든요.
졌다.
여수에서도 가져오고
삼천포에서도 가져오고.
어디서든 다 가져온답니다.
남평 어물전.
남평장은 광주로 넘어가는 곳, 광주에서 넘어오는 곳.
그래서 물건도 다양하다.
도시 것, 시골 것 모든 것.
-삼팔장 다시장이 서던 다시면이다.
-학교면은 옆 동네 함평군 마을이다.
함평군에서 고막다리를 건너 다시장까지 왔었다.
장터 전문가로 최근 출간된 책을 선물하였다.
장터정보에 대한 보답이다.
-나주의 진산 금성산 남쪽으로 보이는 영산포.
나주의 3대 오일장으로 꼽히는 오일, 십일장이다.
홍어를 아신다면 영산포를 아실 테다.
-홍어가 영산포를 대표하게 된 것은 항해일수 때문이다.
과거 흑산도에서 영산포까지는 뱃길로 5일 이상 걸렸다.
운송 도중에 홍어가 상할 수밖에 없었으니.
그런데 그게 기막히게 좋은 발효식품이었던 것이다.
해마다 4월 홍어축제까지 열리게 된 것이다.
-장터에 파시는 분만 인심 좋은 게 아니죠.
아껴쓰고 아껴쓰시는 분이 저렇게 주십니다.
더 들어보시죠, 약간 하실 말도 있습니다.
-보여주세요.
-보여주라고?
이것만 보여주면 되죠?
홍어, 고기, 명태.
명태는 여기에서 사고.
이건 다 나눠먹어버려야 돼.
이거 잡수세요.
더우니까 잡숴.
이거 한 판은 다 나눠먹어.
-잘 먹겠습니다.
-잘 가세요.
다음에 또 봐요.
-원래 장터 밖을 휙 돌아 편하게 다니던 버스였다.
지금은 아니다.
애써 장터까지 들어와 모든 분 태우고 갖은 짐 싣고 다니는 버스다.
시의 배려다.
-남광주로 간다는 것은 나주에서 북으로 간다는 것.
북으로 가는 그 길에 아름다운 남평역이 있다.
시인은 그래서 장터 사람들 이야기를 담뿍 담고 있지 않았던가.
-한 달, 보름, 열흘.
그러다 5일에 한 번.
세상에 장터가 있을 때 우리의 장터는 아름다운 이름, 오일장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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