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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국군전사자 유해봉환식

최대환 앵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미국 하와이에 임시 안치 중이었던 6·25전쟁 국군전사자 일곱 분의 유해가 73년 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옵니다.
KTV에선 우리 국군전사자의 귀환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해드릴 텐데요.
먼저 이에 앞서 스튜디오에 나와 계신 김영선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유가족관리과장과 함께 이번 유해 봉환의 의미, 절차 등을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연: 김영선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유가족관리과장)

최대환 앵커>
잠시 후면 국군전사자 유해봉환식이 진행됩니다.
국군전사자를 모시고 하와이에서 출발했던 수송기는 (20:13분 착륙 예정) 동해 바다에서 공군 전투기의 호위를 받으며 서울공항에 착륙할 예정인데요.
이번 유해 봉환, 우리 국군전사자들의 73년 만의 조국 귀환인 만큼 그 의미가 클 것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김영선 과장>
오늘 실시되는 국군전사자 봉환행사는 6·25전쟁 당시 수습되지 못한 국군전사자의 유해를 73년 만에 국내로 모셔오는 뜻깊은 행사로서, 국가를 위한 고귀한 희생과 공헌을 기리기 위해 계획되었습니다.
이번에 봉환되는 국군전사자 유해는 6·25전쟁 당시 미군이 수습한 유해와 전쟁 이후에 북한에서 발굴된 유해 등 총 7분으로서, 73년만에 하와이에 있는 미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인 美 DPAA를 거쳐 국내로 모셔지는 호국영웅들입니다.
특별히 이번 행사는 정전협정과 한미동맹 70주년과 연계되어 “자유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라는 주제로 행사가 진행되는 만큼 그 의미가 더 특별하다고 생각됩니다.

최대환 앵커>
7월 27일 내일은 정전협정 7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한반도에 총성이 멎은 지 70년이 흘렀지만 아직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장병들은 여전히 많은데요.
국방부에서는 홀로 남겨진 호국 용사들의 유해를 찾아 조국의 품으로 모시는 유해발굴사업을 진행 중인데, 현재 어느 정도 진척된 상황인가요?

김영선 과장>
6·25전쟁 당시 미쳐 수습되지 못한 채 이름 모를 산야에 묻혀계신 우리 국군 전사자들은 13만 여명이 나 됩니다.
이 중 2000년부터 실시한 유해발굴사업을 통해 현재까지 수습된 국군전사자는 총 11,313구로서 아직까지도 찾아야 할 유해는 12만 여구나 됩니다.
이를 위해 국방부에서는 매년 40여개 부대에서 연인원 10만여명이 유해 발굴 사업에 참여하고 있으며, 한 해 기준으로 약 300에서 500여구의 유해를 발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발굴된 유해의 신원확인을 위해 13만 여명의 미수습전사자들의 유가족를 찾아 DNA 시료채취를 해서 유해 DNA와 비교분석을 통해 신원확인하고 있는데, 2000년부터 현재까지 214분이 신원이 확인 되어서 가족의 품으로 돌려드렸습니다.

* 참고현황: 미수습 121,879구 (6·25 미수습 전사자 133,192명 - 발굴 11,313구)

최대환 앵커>
한편 6·25전쟁 당시 숨진 우리군과 미군의 유해를 서로 돌려주는 한미 상호 봉환도 진행되고 있는데요.
현재까지 우리나라와 미국이 6·25 전사자 유해를 서로 봉환한 현황은 어떻게 됩니까?

김영선 과장>
6·25전사자 한·미 상호 봉환 현황으로는 먼저, 미국에서 보관중인 국군전사자를 국내로 모셔오는 봉환행사는 2012년부터 이번 행사를 포함하여 총 7차례를 통해 총 313분의 국군전사자의 유해를 모셔왔으며, 이 가운데 19분의 신원이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국내에서 발굴하여 미국으로 봉송한 유해는 2000년부터 올해 2월에 실시한 미군유해 1구를 포함하여 총 10차례에 걸쳐 총 26구의 유해를 미국으로 보내드렸습니다.
특히, 한·미간 유해발굴사업은 2000년부터 MOU를 체결하여 매년 한·미 공동 조사·발굴·감식 등 긴밀한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있고, 2007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창설된 이후부터는 연 1회 이상의 정례화된 공동 조사·발굴·감식과 각종 정보공유, 상호 유해봉환 등 한미 간의 노력이 더욱 강화되고 있습니다.

최대환 앵커>
한편 봉환식에 앞서 한국시간으로 오늘 오전(26일, 06:00) 미국 하와이에선 국군전사자 유해인수식이 진행됐는데요.
어떤 의미가 있고, 또 유해 인계인수가 유엔사령부를 통해 진행됐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김영선 과장>
오늘 오전 미국 하와이에 있는 히캄 공군기지에 실시한 유해인수식은 미 DPAA에서 보관중인 국군전사자 유해를 국내로 모셔오기 위해 한미간에 시행된 행사입니다.
이러한 유해인수식은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켜낸 위대한 영웅들을 영원히 기억하고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숭고한 소명을 다하기 위한 한미간 공동 노력의 결실이라는 의미를 담고있습니다.
그리고, 유해인수식에서 유엔사령부를 통해 진행된 것은, 6·25전쟁 당시 유엔군의 일부로 참전한 미군이 미군의 유해로 알고 모시고 있던 전사자가 다양한 절차를 거쳐 국군으로 확인되었고, 유엔사령부를 통해 우리나라로 인계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유해인수식은 최초 유해를 모신 관을 덮은 성조기에서 유엔기로 교체하고, 유엔기를 다시 태극기로 관포하여 인계하는 모습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최대환 앵커>
본격적으로 오늘 귀환하신 국군전사자에 대한 이야기 나눠 봅니다.
고국으로 돌아온 일곱 분 중 신원이 확인된 분은 고 최임락 일병 한 분인데요.
어떤 분이셨는지 먼저 소개해 주시죠.

김영선 과장>
故 최임락 일병은 1931년 울산시 울주군에서 6남 2녀 중 셋째이자, 차남으로 출생하셨습니다.
고인은 6·25전쟁이 발발한 후 낙동강선 방어작전이 한 창이던 1950년 8월 16일에 당시 19세의 나이로 부산 징집소에 입대하여 美 제7사단에 배치되었고, 이후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셨습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고인의 소속부대인 美 제7사단은 원산 상륙작전을 위해 부산으로 이동한 후 1950년 10월 19일 원산을 향해 부산항에서 출항하였습니다.
그러나 북한군이 원산항 앞바다에 설치한 수많은 기뢰로 인해 美 제7사단은 상륙지역을 함경남도 이원항으로 변경하여 1950년 10월 29일 이원항에 상륙하였습니다.
이후 유엔군 최종공세계획에 의거 국경선에 진출할 목적으로 장진호 북쪽에 집결하던 美 7사단과 美 해병 1사단 등은 중공군의 매복 기습공격을 받게 되어 장진호 계곡을 철수하는 작전 중에 오늘 봉환되는 故 최임락 일병님이 1950년 12월 12일에 전사하셨습니다.

최대환 앵커>
국방부에서는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형제를 ‘호국의 형제’로 칭하고 있는데요.
이번 신원 확인 절차에서 고 최임락 일병(동생)과 본가로 봉송된 고 최상락 하사(형)가 형제 관계임이 밝혀졌다고 하죠?

김영선 과장>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고 최임락 일병님은 6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나셨습니다.
고인의 바로 위 형님이셨던 고 최상락 하사님은 6·25전쟁 이전인 1949년 2월 27일에 당시 20세의 나이로 입대하여 3사단에 소속되어 6·25 전쟁에 참전하셨고, 동생인 고 최임락 일병님이 입대하기 이틀전인 1950년 8월 14일 경북 영덕지구 전투에서 전사하셨습니다.
이번에 봉환되는 고 최임락 일병님의 신원확인하는 과정에서 고 최상락 하사님과 형제임을 알게되었습니다.
6·25 전쟁 당시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한 집안의 형제들이 함께 전쟁에 참전한 경우가 많이 있는데 유해발굴을 통해 호국의 형제로 확인된 경우는 이번 고 최임락·최상락님을 포함하여 5번째입니다.

최대환 앵커>
한편 고 최임락 일병께는 참전기장이 수여될 것으로 예정되어 있는데요.
참전기장이 어떤 것인지 설명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영선 과장>
오늘 국군전사자 봉환식간 신원이 확인된 고 최임락 일병님께 참전기장이 수여되는데, 참전기장은 1950년 제정된 대통령령 제390호에 의거, 6·25전쟁에 참전한 군인, 경찰들에게 수여되는 종군기장으로, 유엔군 소속 외국 군인들에게도 수여됩니다.
이 참전기장은 원형 메달에 수가 달린 형태로, 대한민국 도형, 탄환, 월계잎 등이 새겨져 있습니다.

최대환 앵커>
지금까지 2023년 국군전사자 유해봉환식 함께 하셨습니다.
오늘 고국으로 돌아온 총 일곱 분의 유해 중 고 최임락 일병을 제외하곤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인데요.
국군전사자들의 신원을 확인하기 어려운 이유, 어디에 있을까요?

김영선 과장>
6.25 전쟁 당시 전사자를 확인할 수 있는 인식표나 유품 등 단서도 부족하고, 전사자에 대한 개인 신상정보 및 의료정보나 기록 및 자료 등 도 부족한 상황이어서 유해의 신원확인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유가족의 DNA 비교분석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을 대상으로 유해발굴사업에 대한 다양한 홍보를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유가족의 DNA가 많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따라서, 더 많은 유가족들께서 DNA 시료채취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전 국민들이 홍보 주체로서 적극적인 동참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최대환 앵커>
총 일곱 분의 유해는 이제 국립서울현충원 내에 있는 유해발굴감식단으로 이동하는데요.
이후 어떤 절차가 남아 있는 건가요?

최대환 앵커>
오늘 봉환된 국군전사자 7분의 대해서는 최고의 예를 다하기 위해 군사경찰의 호위하에 국립 서울현충원 내에 있는 우리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도착한 유해는 국방부 차관 주관하에 “국군전사자 유해 영접 및 안치식”을 통해 유해보관소에 안치하게 됩니다.
안치식은 “유해안치-헌화-묵념-호국영웅에 대한 경례”의 순서로 진행되어 마지막까지 최고의 예를 갖춰 행사가 진행되게 됩니다.
이렇게 안치된 유해는 신원확인을 위한 정밀감식, 유전자 검사 등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최대환 앵커>
16만 명 가량으로 추산되는 6·25전쟁 전사자 중 아직 유해를 찾지 못한 참전용사는 무려 12만 명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은 뜻깊은 올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우리 장병들의 유해를 발굴하는 노력이 더욱 필요할 텐데요.
국방부 차원에서 향후 어떤 계획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영선 과장>
우리 국방부에서는 아직까지 미수습된 호국영웅들의 유해 발굴과 신원확인을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보다 효과적인 방법으로 유해를 발굴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신원확인을 위한 DNA 분석 역량을 발전시켜 나갈 예정입니다.
그리고, 유해발굴사업은 국방부만의 노력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민관군이 함께하는 협업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에 대해 마지막 한분까지 조국과 가족의 품으로 모시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최대환 앵커>
지금까지 김영선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유가족관리과장과 함께했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6·25전쟁의 총성은 멈추었지만 아직 그때의 아픔은 온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가치와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치며 산화한 전사자들은 우리들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있는데요.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호국영웅들의 조속한 귀환을 바라며, 특별생방송 2023년 국군전사자 유해봉환식을 마칩니다.
함께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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