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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V 국민방송

하와이 농장서 번 돈으로 독립 자금 지원

국민리포트 월~금요일 19시 40분

하와이 농장서 번 돈으로 독립 자금 지원

등록일 : 2017.08.11

올해는 광복 72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광복이 있기까지 수많은 희생과 노력이 있었는데요.
하와이 교민들의 독립자금 조달과 민족정체성 교육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문인수 국민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의 공식 해외 이주는 1902년 미국 하와이로 떠난 것이 처음입니다.
제물포항을 떠나 일본을 거쳐 하와이 오하우섬까지 보름여 항해 끝에 도착한 교민들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힘든 이민 생활을 시작합니다.
주한 미국공사였던 알렌의 주선으로 시작된 하와이 이민은 1905년까지 64회에 걸쳐 7,400명에 이릅니다.
115년 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선조들이 멀리 하와이 이민 길에 올랐던 켈릭호입니다.
당시 121명이 처음 이 배를 타고 하와이로 떠났습니다.
이들은 하루 10시간씩 고된 노동을 하고 월급으로 17달러를 받았습니다.
비록 적은 월급이지만 교민들은 1명당 연간 5달러에서 10달러를 독립자금으로 내놓았습니다.
녹취> 신은미 관장 / 한국이민사박물관
“이 독립자금은 상해임시정부나 독립운동을 위한 여러 단체에서 쓰여 우리나라 독립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이죠.”
박용만 장군은 군사학교를 세워 소년병을 모아 독립군을 양성하기도 했습니다.
교민들은 또 한인학교를 세워 한글을 가르치고 결혼도 한국인끼리 하는 등 정체성을 지키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녹취> 임유상 / 전시해설사
“우리나라와 똑같은 식생활을 했으며 심지어는 결혼까지도 우리나라 여성과 결혼하기 위해 '사진신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 문화를 고수했습니다.”
1902년 첫 이민 출항지였던 제물포항.
길게 늘어선 이민 행렬, 사탕수수 농장의 고된 노동.
조국의 독립을 위한 지원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눈물겨운 모습들 당시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은 진한 울림을 줍니다.
녹취> 김민정 / 인천시 서구
“한인학교에서 공부를 가르치면서 우리나라의 정신이나 한글을 잊지 않고 가르쳤다는 부분에 굉장히 감명받았습니다.”
녹취> 김준성 / 인천 간재울초교 6학년
“대개 나라를 떠나는 것이 쉽지 않은데 그런 마음을 먹고 그래도 살아보겠다는 의지가 감동적이었고요. 저도 그런 분을 본받고 싶어요.”
모든 것이 어려웠던 시절 우리나라 국민이 이민을 떠났던 역사적인 장소인 인천에 세워진 한국이민사박물관의 귀중한 소장품들이 광복 72주년을 맞아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국민리포트 문인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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