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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V 국민방송

개항의 관문···135년 역사 '인천 세관'

국민리포트 월~금요일 19시 40분

개항의 관문···135년 역사 '인천 세관'

등록일 : 2018.08.16

장현정 앵커>
세관은 우리 역사와 함께한 기관 중 하난데요.
135년 전, 제물포항 개항과 함께 인천해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광복이후 자주적 관세제도가 도입되기까지 아픈 역사를 안고 있는 인천세관의 어제와 오늘 곽지술 국민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곽지술 국민기자>
1883년 인천 제물포항이 문을 엽니다.
개항 후 무역상들이 찾아오고 조선의 특산물과 서구의 공산품이 드나들면서 항구가 북적입니다. 수출입과 함께 가장 먼저 해관이 들어섭니다.
경기와 충청·전라·황해·평안도를 관할하는 인천해관의 앞날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조선의 국운이 다해가던 1907년 일본식 이름인 세관으로 바뀌고 이어 1910년에는 조선총독부 인천세관으로 전락합니다.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는 인천세관은 광복 이후 1949년 조세주권을 찾아오면서 진정한 관세업무를 시작합니다.

인터뷰> 김상열 / 인천광역시립박물관 교육부장
“광복이 되었습니다만 미군정의 통치를 받았기 때문에 1949년이 되어서야 다시 관세행정의 주권을 되찾게 됩니다.”

1876년 조선은 일본과 강화도조약에 따라 조일수호조규를 맺었지만 관세를 부과하지 못했습니다.
관세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해 무역 자주권을 일본에 넘겨준 겁니다.
조선은 뒤늦게 재조정 협상을 추진했지만 일본의 압력으로 수포로 돌아갑니다.

1882년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면서 관세 부과·징수권을 인정받게 됩니다.
인천 세관의 이런 아픔과 변천 역사가 빛바랜 문서에 담겨있습니다.
당시 인천세관청사의 설계도입니다.
이 도면은 인천해관이 관세 징수 말고도 인천항 주변 도시계획을 주도한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인터뷰> 김준혁 / 인천 용현남초 4학년
“옛날에도 설계도를 그려서 멋진 건물을 만들었다는 것이 자랑스러운 것 같습니다.”

옛날 인천의 모습과 정미소에서 사용하던 쌀 포대와 영수증과 계산서는 당시 생활상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터뷰> 정현주 / 인천시 남구
“옛날 인천이라는 지역, 옛날 건물이라든가 어디에 어떤 게 있었고 아이들한테 체험을 할 수 있게 해서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설계도를 토대로 복원된 해관 창고.
사무실과 경비실은 문화재로 등록돼 관리되고 있습니다.
제가 서 있는 바로 이 건물이 우리나라 최초로 관세업무를 담당했던 지금의 관세청 격인 인천해관 건물입니다.
1883년 근대산업항 역사를 시작한 인천항이 성장을 거듭해 오고 무역 규모가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세관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성수 / 인천본부세관 화물정보분석과장
“아무것도 없던 위치에서 오늘날까지 변천을 비교해보면 지금 전체규모를 따져 볼 때 작년 말 기준 대략 40%의 수출입 규모를 차지하고 있고 무역액은 수출입 약 이천억 불 정도를 웃도는 수준에 와 있습니다.”

개항과 함께 시작해 변천과 발전을 거듭해 온 세관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년을 맞아 한 단계 더 도약하길 기대합니다.
(영상촬영: 김창수 국민기자)

국민리포트 곽지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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