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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V 국민방송

광복 70년, 첫 서양화가 고희동 재조명

국민리포트 월~금요일 19시 40분

광복 70년, 첫 서양화가 고희동 재조명

등록일 : 2015.07.09

앵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 화백을 아십니까 광복 70년을 맞아 춘곡 고희동 화백의 작품과 그의 가옥이 문화유산으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습니다.

곽지술 국민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사내용]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 선생이 40년 간 살던 가옥입니다.

전통 한옥 구조에 서양의 주거 문화를 도입해 실용적으로 지은 고희동 가옥은 근대 초기 한국 주택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등록문화재 84호로 근대문화유산으로 가치가 있는 고희동 가옥은 복원을 거쳐 2012년부터 일반에게 공개 됐습니다.

씽크> 최일옥 / 고희동 화백 후손

"당시 일본문화를 보고 배우신 편리함을 응용하신 그런 구조에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한옥에는 선생이 생전에 작품 활동을 하던 화실과 일상이 남아 있습니다.

인터뷰> 최일옥 / 고희동 화백 후손

"할아버지 동생 댁이 있었는데 정원으로 된 거고 구조는 거의 그대로예요 내부에 있는 그림들은 처음에 오픈 기념전시회 한 때 후손들이 가지고 있는 작품들을.."

1909년 일본으로 건너간 고희동 화백은 1915년 도쿄미술학교 서양화 과정을 마치고 귀국해 '조선인 서양화가 1호'가 됐습니다.

선생이 일제 강점기에 서화협회과 함께 시작한 협회전은 총독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19회나 이어가 조선 예술인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광복 후에는 서화협회전은 대한미술협회를 거쳐 현재의 국전으로 발전됐습니다.

우리나라 초대 예술원장인 고희동 화백은 해방 후에는 대한 미협을 조직해 예술가들의 지평을 넓힌 미술 행정가이기도 합니다.

인터뷰> 김만범 자원봉사자 / 고희동 가옥

"고희동 선생님의 작품이 세 점이 남았는데 정자관하고 자화상 등이 있는데 여기에 있는 것은 복제본이고 진품은 현대미술관에 소장돼 있습니다."

화백은 전통적 동양화가 아니라 대상에 대한 관찰, 박진감 있는 묘사 등 서양화의 특징을 동양화에 옮겨보려고 노력했습니다.

현장멘트>

춘곡 고희동 화백이 남긴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 세 점은 전형적인 인상주의 기법을 적용한 자화상 작품입니다.

1915년 고희동의 작품 자매’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이자 그의 기상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그림입니다.

인터뷰> 황형식 관람객

"고희동 선생님의 첫 서양예술이잖아요. 용기를 내셔서 하셨던 게 멋있습니다."

인터뷰> 김형탁 부학장 / 서울호서예술전문학교

"고희동 선생님 유물이 있는 곳에 왔는데 그 당시 시절에 서양화를 하셨다는 게 대단하신 것 갖고 유화로 되어있는데 깊이가 있고 대단한 작품인 것 같습니다."

춘곡 고희동 선생의 서양화와 함께 그의 작품의 공간은 도심 속 문화 예술이 살아 있는 근대문화유산으로 그 가치를 더 해가고 있습니다.

국민리포트 곽지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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