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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V 국민방송

4·3사건 '유감'표명 [유용화의 오늘의 눈]

KTV 대한뉴스 월~금요일 19시 00분

4·3사건 '유감'표명 [유용화의 오늘의 눈]

등록일 : 2019.04.04

유용화 앵커>
국방부는 오늘 제주 4.3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대통령이 유감을 표명한적은 몇차례 있었지만, 70여년 전 제주 4.3사건의 직접적 진압 관련 부처인 국방부가 제주도민들이 희생된 것에 대해 유감과 애도를 표명한 일은 처음입니다.

제주 4.3사건은 1947년 3.1절 기념식 발포사건 때부터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통행금지령이 해제될 때까지 약 7년 7개월 동안 제주도민 3만여명이 희생된 사건입니다.

1947년부터 1954년까지 7년간은 한반도의 정치권력이 결정됐던 시기입니다.
미군정과 남북 단독정부수립, 그리고 남북간의 동족학살 전쟁이었던 6.25전쟁이 있었던 시기입니다.
이 7년동안 정치권력의 무자비한 무장투쟁 속에서 제주도민들이 희생당하고 50여년 이상 긴세월 동안 침묵의 바다에서 살아야했던 사건이 바로 제주 4.3사건입니다.
제주도는 특히 일본군이 태평양 전쟁의 최전선 방어진지로 삼았기 때문에, 제주도민들에 대한 억압과 착취는 상상을 불허했던 곳입니다.
1945년 해방을 맞아 그 기쁨을 만끽한 시기는 제주도민들에는 잠깐이었습니다.
1947년부터 시작된 남로당과 서북청년단 등 극좌 및 극우 무장세력들의 무장봉기와 무차별 쟁투에 휩싸인 제주도민들은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을 스스로 보호해야 하는 비극적 상황에 처해버린 것이죠.
그러나 가장 주요했던 문제는 좌우익의 권력쟁투 중간에 끼어있었던 제주도 양민들을, 국가권력이 보호하기는커녕 공산주의 세력으로 몰아 진압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군정과 남로당 그리고 국가권력에 의해 이루어졌던 제주도민들의 진압 아닌 진압, 학살 아닌 학살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1954년 이후 50년 이상 제주도는 침묵의 섬, 슬픔의 섬 이었습니다.
한집 건너 이웃에 살고 있던 주민이, 친척과 형제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라졌는지 아무도 이야기하지 못하는 금기의 과거를 간직해야 했습니다.
일명 제주 4.3사건 관련자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권위주의 정권이 끝난 시점까지도 국가권력의 감시대상이었습니다.
사실상 이들이 희생자이며 국가권력이 보상하고 사과해야 하는 선량한 국민이었다는 사실은 힘들고 긴 진상규명 활동이 끝나서야 밝혀졌습니다.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진상규명이 시작됐고, 그 학살과 진압, 그리고 피해의 현장이 공개됐습니다.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은 후보시절 4.3사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습니다.
결국 1999년에 가서야, 제주 4.3사건에 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게 됐고, 2000년대 들어서는 공산폭동이라는 단어가 사문화됐습니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차원에서 공식적인 사과가 있었고,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70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했습니다.

한국현대 정치사의 집단적 희생자였던 제주도민들이, 직접적 관련부처였던 국방부의 공식유감 표명을 받아내는데는 무려 71년이나 걸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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