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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열사 50주기 [유용화의 오늘의 눈]

KTV 대한뉴스 월~금요일 19시 00분

전태일 열사 50주기 [유용화의 오늘의 눈]

등록일 : 2020.11.11

유용화 앵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6일 전태일 열사의 묘역이 있는 마석 모란 공원을 찾았습니다.

이 장관은 묘역 방명록에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노동존중사회를 실현 하겠습니다" 라고 썼습니다.

1970년 11월 13일 청계 피복 노동자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자살 했습니다.

이때 전태일 씨의 나이는 불과 22살 이었습니다.

청계천 평화 시장의 재단사 전태일 씨가 분신할 때, 그의 손에는 근로기준법 책이 함께 쥐어져 있었습니다.
전태일 열사가 근무하던 평화 시장은 하루 15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곳이었습니다.

특히 2만여 명의 근로자들 중 90% 이상이 평균 연령 18세의 여성 들이었습니다.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었던 당시 근로자들의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던 사업장 이었습니다.

더욱이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기본적인 근로 기준법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1970년대 라고 하면 박정희 정권의 고도성장이 기치를 올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박 정권은 '수출만이 살 길'이라며, 대기업에게 막대한 특혜를 주면서 한국의 산업화를 주도해 나갔습니다.

국가 관료 자본 주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죠.

금융권의 저리 대출 특혜와, 외국의 차관 증여 등 국가에 의해 육성된 대기업은 한국 경제 발전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국가와 자본의 기형적인 결합이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죠.

반면에 자생적으로 성장하던 중소기업은 설 자리를 잃어버렸습니다.

중소기업이 살 길은 대기업의 하청기업으로 자리 잡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공장이 세워지고, 기업이 투자하면서 일자리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일할 노동자들이 필요했습니다.
농촌에서 젊은 사람들이 대거 서울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의 대명사였습니다.
근로기준법도 지켜지지 않는 사업장에서 기계처럼 일했습니다.

그러나 국가는 아무런 보호 장치를 하지 않았고, 기업주들의 이익만 지켜주었습니다.
당시 노동자들로부터 나온 잉여 가치는 결국 자본가들의 자본 축적으로 이동했습니다.

60년대에서 70년대, 한국 자본주의의 전형적인 자본 축적 과정입니다.

그리고 대기업은 살찌워졌고 노동자들은 쓰러져 갔으며, 박정희 정권은 수출 100억 달러 탑을 쌓았습니다.

19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후 한국 사회는 긴장하기 시작했으며 노동자들의 살인적인 근로 환경에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노동 조합이 결성되었고 노동 운동이 발흥됐습니다.

1970년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이후 현직 노동부 장관이 묘역을 방문한 일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는데요, 13일 50주기 기념일을 앞두고 정부 차원에서 진행된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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