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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중심 '동학농민혁명' [유용화의 오늘의 눈]

KTV 대한뉴스 월~금요일 19시 00분

역사의 중심 '동학농민혁명' [유용화의 오늘의 눈]

등록일 : 2019.02.21

유용화 앵커>
동학농민 운동에 대한 역사적 가치와 의미가 재조명 될것으로 보입니다.

동학군이 황토현에서 대승을 거둔 5월 11일이 동학혁명 법정 기념일로 정해졌습니다.

2004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에 대한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14년 만에 동학운동이 국가기념일로 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

동학은 조선 말 부패한 세도 정치세력의 가렴주구에 저항한 농민들이 일으켰던 1차 봉기에서는 반봉건적 신분해방 투쟁을 선언했었죠.

당시 청춘과부의 재가 허용과 공사노비제의 일체 혁파를 주장한 폐정개혁 12조와 최초의 민중 자치기구인 집강소 설치는 사실상 근대화의 주요한 징표였습니다.

1894년 7월 23일 일본군이 경복궁을 침략해 조선의 국왕을 포로로 잡은 사실이 알려진 뒤 일어난 2차 봉기 역시 그 역사적 의미가 크다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1894년 갑오년 10월에 일본의 침략에 맞서 전국에서 동학군 300만이 봉기하여 1년 동안 국가의 안위를 위해 사실상 일본과 전쟁을 벌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갑오왜란이라고 부릅니다.

우수한 화력을 앞세운 일본과 방어전쟁을 벌이며, 동학군은 약 30-40만명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잔인한 소개작전에도 불구하고 동학군은 유생 및 의병들과 결합하여 끈질기게 항일운동에 나서게 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었던 김구선생 역시 청년시절 해주 지역의 동학접주였습니다.

1919년 3.1운동 역시 동학을 계승한 천도교가 중심이 되어서 일어난 것입니다.

천도교의 손병희 선생 등 약 15명의 천도교 지도자들이 33인 독립선언서에 이름을 올렸으며,
4만여부의 독립선언서 인쇄본은 200만 천도교들의 전국 조직으로 사전에 광범위하게 배포됐었죠.

동학은 사람, 즉 백성이 하늘이니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라고 하는 인내천 사상과 인간은 누구나 자기 안에 하느님을 모시고 있다는 시천주, 즉 혁명적인 평등사상을 19세기에 표방했습니다.

반상의 차별과 서얼, 적서의 구별에 반대했으며 노비제도 폐기는 물론이고 남녀 평등사상에 입각해 여성해방과 어린이 해방까지 역설했었습니다.

당시 세계 어느 다른 나라에서도 표방하지 않았던 인간의 본질적 평등성을 19세기에 동아시아의 한반도에서 피력한 민주주의의 혁명적 사상이었습니다.

사실 그동안 동학은 그 변혁적 역사성과 근대성에 비해 소홀하게 취급되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동학 연구에 대한 지원은 물론이고, 기념행사도 지역 행사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올 5월 11일부터 2억원이 편성된 예산으로 문체부 주관 하에 동학혁명 기념식이 열리게 됩니다.

이번 국가기념일 지정으로 세계 3대 민중혁명으로 평가받고 있는 동학혁명이 새롭게 조명되어 대한민국의 역사에 중심적으로 자리잡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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