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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의거 보도' 러시아 신문 첫 공개

KTV 대한뉴스 월~금요일 19시 00분

'안중근 의사 의거 보도' 러시아 신문 첫 공개

등록일 : 2019.05.29

신경은 앵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기록한 러시아 극동 지역 신문기사, 24건이 공개됐습니다.
당당하고 의연했던 안 의사의 모습과 유해 매장지를 언급한 내용도 담겼습니다.
곽동화 기자입니다.

곽동화 기자>
하얼빈 의거 직후 안중근 의사의 모습과 체포과정, 사형 집행 뒤 매장지까지 기록된 러시아 신문기사가 처음 공개됐습니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등 극동 지역 일간신문들이 보도한 안중근 의사 의거와 관련한 기사 24건을 발굴해 공개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기사는 하얼빈 의거 다음날인 1909년 10월 27일부터 이듬해인 1910년 4월 21일까지 보도된 것입니다.

녹취> 김형국 / 국가기록원 연구협력과장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러시아 지역신문을 일괄해서 공개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기사 내용을 통해서 러시아 지역사회에 안 의사에 대한 인식을 확인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사료라고 판단됩니다."

"죽으면서 나는 기쁘다. 나는 조국 해방의 첫 번째 선구자가 될 것이다.”

'쁘리 아무리예지(紙)'는 하얼빈 의거 후 처음 일제의 심문을 받는 자리에서 당당하고 의연했던 안중근 의사의 발언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보스토치나야 자랴지(紙)'도 "나의 유골에 자유가 비출 것이다. "라는 안 의사의 발언을 기사에 담았습니다.
'쁘리 아무리예지(紙)'는 같은 달 6일에는 1일 있었던 안 의사 이송상황을 자세히 전했습니다.
신문은 "기차역의 모든 체포자들은 발에 족쇄를 차고 있었고 안은 예외적으로 손과 발에 모두 족쇄를 차고 있었다."며 안 의사에 대한 일제의 심한 감시가 있었음을 암시했습니다.
'쁘리 아무리예지(紙)'는 1910년 2월 27일자 안 의사 재판 기사에서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 같았으며"라며 안 의사에 우호적인 당시 지역 내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이어 안 의사의 어머니가 "가족에 누를 끼치지 말고 가치 있게 죽음을 맞으라"한 부탁도 담담하게 서술했습니다.
특히, '우수리스까야 아끄라이나지(紙)'는 1910년 4월 21일자 기사에서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기존에 알려졌던 뤼순 감옥 공동묘지가 아닌 지역의 기독교 묘지에 묻혔다고 보도했습니다.
(영상취재: 김명신 / 영상편집: 양세형)
이와 관련해 국가기록원은 정부 차원에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KTV 곽동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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