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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V 국민방송

동학농민혁명 126주년 [유용화의 오늘의 눈]

KTV 대한뉴스 월~금요일 19시 00분

동학농민혁명 126주년 [유용화의 오늘의 눈]

등록일 : 2020.05.12

유용화 앵커>
국가기록원에서는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을 맞아 녹두장군 전봉준 등 동학농민군들의 형사재판 원본을 복원해서 공개했습니다.

약 217장 분량의 판결 기록은 일제가 전봉준 장군 등의 재판에 깊숙이 개입했음을 보여주는데요, 경성주재 일본 영사 우치다 사다쓰치의 서명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1894년 10월 27일 일본 총리 이토 히로부미는 조선의 동학농민군을 모조리 죽이라는 결정을 내립니다.

그리고 일본군은 약 30만 명의 동학군을 무자비하게 학살합니다.

왜냐하면 1894년 동학농민군 2차 봉기의 구호는 "일본은 우리의 적국이다."라는 척 왜였기 때문입니다.

동학농민혁명은 1894년 일본군이 경복궁을 침략하자 발발하여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일어난 운동입니다.

그러나 전봉준, 김개남 장군 등에 대해서는 아직도 독립 유공 서훈도 없습니다.
동학농민운동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근대적 의미의 국민국가 형성 운동이었기 때문입니다.

일부 사람들이 한국의 민주주의가 해방 이후 서구에서 이입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결코 아닙니다.

19세기에 한국은 어떤 나라보다 앞서서 신분제를 폐지하는 인간 평등사상, 그리고 자주 독립국 쟁취 운동, 집강소 등 자치운동 및 인간의 해방과 자유 등을 쟁취하기 위한 모습을 동학 농민혁명에서 보여주었습니다.

동학은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 1900년대 약 300만의 동학교도로 성장하여 3.1운동을 직접 일으키는 원동력이 됩니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지 1백26년이 되었습니다.

지난해 처음으로 동학농민혁명이 국가기념일로 정해졌습니다.

올해부터 고교 역사 교과서에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을 고창 무장 기포로 서술되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시작된 동학농민혁명 세계기록 문화유산 등재 작업이 이제야 결실을 볼 것으로 보입니다.

동학을 기념하는 전국 규모의 공원이 뒤늦게 정읍에서 첫 삽을 떴습니다.

그러나 동학과 관련된 많은 유적지가 방치되어 있고, 추가적인 발굴 조사와 연구도 대단히 미흡한 실정입니다.

동학에 관한 연구와 기념사업, 그것은 우리 스스로 민주주의와 근대 국민국가 형성을 일구었다는 주요한 역사적 사실을 복원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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