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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V 대한뉴스 월~금요일 19시 30분

"국민과 평화통일 위해 기도" [유용화의 오늘의 눈]

회차 : 243회 방송일 : 2019.06.11 재생시간 : 03:19

유용화 앵커>
"아내가 없었더라면 내가 오늘날 무엇이 되었을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1983년 미국 망명 시절, 샌프란시스코에서 강연 도중 김대중 전대통령이 밝힌 소회입니다.
김대중의 정치적 동반자이자 여성운동가로서, 한국현대 정치사의 굴절과 영광, 그리고 오욕을 함께했던 이희호 여사가 소천했습니다.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과 만나기 전에도 주목받았던 사회운동가였습니다.
미국에서 유학한 사회학 연구자였으며, 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에서 여성 기독운동을 이끌어 나가기도 했습니다.

1962년 DJ가 정치적으로 가장 힘들었을 때 반려자 생활을 함께 시작한 고 이희호 여사는, 단순히 정치인 김대중의 아내만은 아니었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시절 DJ에게 가해졌던 억압과 탄압을 함께 이겨냈고,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DJ를 지켜줬던 든든한 동지였습니다.
사실 DJ와 한평생을 같이 했기 때문에 DJ가 우리사회에 남긴 민주주의 업적과 궤적이 고스란히 이희호 여사의 일생에도 녹아 있습니다.
이희호 여사는 1974년 김대중 납치사건때도, 1980년 DJ가 사형선고를 받았을때도, 1987년, 92년 대선에서 DJ가 실기했을 때도 항상 옆에서 그를 지켜주었죠.
역시 역사상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였던 1997년 15대 대선에서도 함께 했었습니다.
2000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던 평양에 DJ와 함께 방문하여 김정일 위원장과 환담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고 이희호 여사는 별세 직전 "우리 국민이 서로 사랑하고 화합해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바란다"면서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 국민을 위해,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 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사실상 DJ의 생각과 마음도 함께 전한 것으로 볼 수가 있는데요.
정치권은 이희호 여사의 별세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하나로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여야 정치인들이 오전부터 빈소를 찾아 그 아픔과 안타까움을 함께 했고, 여야 5당 대표 모두가 장례위원회 고문으로 참여합니다.
이희호 여사의 별세 소식은 북측에도 전달됐다고 하는데요.
북측이 어느정도 수준의 조문단을 파견할지도 관심거리입니다.
과거 2009년 DJ서거 당시 북측은 고위급 인사들 중심으로 조문단을 파견해 남측의 고위 정치인들과 만나기도 했습니다.
만약 북측이 조문단을 파견한다면 이를 계기로 정체돼있는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길 기대하는 바램도 있습니다.
이희호 여사의 유언같이 고 김대중 전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이었던 남북관계의 진전이 이뤄져 민족의 평화통일이 조금이라도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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