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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그날'을 기억하며 [유용화의 오늘의 눈]

방송일 : 2019.02.19 재생시간 : 03:13

유용화 앵커>
오늘부터 서대문 형무소에서 특별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서 열리는 전시회입니다.

1919년 12월 서대문 형무소에는 3천 여명이 갇혔다고 하죠.

전시된 수형기록 카드에는 열다섯살 소년부터 60대 노인까지 망라되어 있습니다.

3.1운동의 거국적, 국민적 성격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기록입니다.

일본의 무력 병탄을 거부하고 자주독립 선언의 기치아래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전 민족적 독립운동 이었습니다.

당시 일제의 통계에 따르면 3.1운동 이후 3개월 동안 시위진압 과정에서 7,509 명이 사망했으며 15,951명이 상해를 입었으며, 46,948명이 구금되었다고 합니다.

3,1운동 수감자 분포가 농민이 58.4%.
학생과 지식인이 20,9%, 상공업자가 13.8%라는 점을 보더라도 3,1운동에 전 계층이 참여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3,1운동을 대한민국 국민국가 형성의 현대적 기점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3월3일 고종의 장례식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남녀노소와 직업, 계층 구분 없이 전 국민이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자유와 독립의 요구를 국민적 요구로 모아냈기 때문입니다.

전 국민적 요구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죠.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연호를 민국 원년으로 선포하고 최초의 현대적 헌법을 공표하게 됩니다.

일제 식민지하 27년 동안 해외에서 국민의 정통성을 확보하며, 독립을 위해서 싸워왔던 임시정부였습니다.

당시 식민지 지배를 받던 수많은 국가들 중 해외에서 군대를 보유하고 무력투쟁을 벌이며 정부를 수립하여 활동했던 나라는 우리 대한민국이 유일무이합니다.

또한 김구주석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좌우통합을 통해 세력을 확장시켰으며 중국 국민당 정부의 승인도 받아냈습니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이 그 현대 정치사적 의미를 갖는 이유는 바로 현재의 우리 대한민국이 그 법통성을 이어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3,1운동에서 피흘리며 만들어 낸 국민국가를 우리가 지금 계승해서 일구어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화재청이 주관하여 4월 21일까지 열리는 ‘문화재에 깃든 100년 전 그날’ 행사는 3.1운동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 국민이 나라를 지키고, 자유와 독립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해온 평범한 국민들의 발자취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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