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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V 대한뉴스 월~금요일 19시 30분

독립유공자 유해와 고국 [유용화의 오늘의 눈]

방송일 : 2019.04.22 재생시간 : 03:36

유용화 앵커>
일본으로부터 병탄 당한 아픔에 더해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반인간적 설움 속에 살아야 했던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
그곳에 우리 대한민국 대통령이 국빈 자격으로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연해주를 근거지로 독립운동을 하다가 졸지에 소비에트 열차에 실려 카자흐스탄으로 쫓겨나야 했던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의 유해가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80여년만에 꿈에 그리던 조국으로 돌아 온 것입니다.
고국인 대한민국 대통령이 직접 두 분의 유해를 카자흐스탄 정부로터 인도 받고, 그곳에서 봉환식을 주관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 전용기가 계봉우, 황운정 독립운동 열사들을 모시고 고국으로 귀항했습니다.

연해주로의 조선인들의 이주는 1869년부터 시작됐죠.
한인들은 연해주에서 땅을 일구고 삶의 터전을 닦아 왔습니다.
특히 1905년 이후부터는 일반인들 뿐만아니라 일제의 탄압을 피해 이곳으로 이주해 온 항일인사들이 가세해 그 수는 점점 늘어나게 됐습니다.
1900년대 초부터 연해주는 항일독립운동의 근거지였습니다.
이범윤의 13도 의군과 창의소, 대한국민 의회 등이 활동하는 곳이었고, 고종황제가 망명정부를 검토했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1920년대 독립군들의 무장투쟁은 연해주 지역에서의 거점투쟁으로 시작됐습니다.
1937년 스탈린정권이 한인들만을 타겟으로 하여 제일 먼저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이유는 명확합니다.

첫 번째로는 극동에서까지 일본과의 군사 전쟁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극동지역에서 항일운동의 근거지였던 연해주의 한인들을 강제이주 시킴에 따라 일본을 안심시키려 했던 것입니다.
스탈린 소비에트 정권은 항일 빨치산 및 독립운동가들과 한인지도자들 대다수를 사전에 일제의 간첩행위라는 죄목으로 처형시킵니다.
그리고 약 20만의 한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시킵니다.

두 번째로는 민족주의적 볼세비즘이라고 불렸던 소비에트 사회주의국가의 민족적 배타주의 정책이었습니다.
소수민족 배외정책을 통해 자국의 국가주의를 강화시키기 위한 정책이었죠.
그 첫 번째 희생자가 나라를 잃었던 한인들이었던 것입니다.
봉오동 전투·청산리 전투의 대장이었던 홍범도 장군 역시 스탈린 강제이주 정책의 희생자였습니다.
일본군이 가장 두려워했고,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혁혁한 공로를 세웠던 독립군 지도자 홍범도 장군이 카자흐스탄에서 쓸쓸하게 최후를 맞았다는 사실은 나라 잃은 설움을 다시한번 느끼게 합니다.

정부는 홍범도 장군 등 다른 세 분의 유해 송환도 추진한다고 하는데요.
하루라도 빨리 그들의 설움을 달래주는 일이 대한민국 후손들이 해야 할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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