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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V 대한뉴스 월~금요일 19시 30분

박항서 감독의 '축구외교' [유용화의 오늘의 눈]

회차 : 125회 방송일 : 2018.12.17 재생시간 : 04:13

유용화 앵커>
박항세오, 박항서 신드롬이 베트남과 한국을 뒤덮고 있습니다.

특히 베트남은 박항서 감독을 베트남의 국부이자 영웅인 호찌민과 동급으로 예우해주고 있습니다.

박감독은 베트남 국민에게 "저를 사랑해주는 만큼 내 조국 대한민국도 사랑해달라"면서 울먹였다고 합니다.

지난 주말 스즈키 컵에서 우승한 베트남 국민들은 자신들의 국기인 금성홍기와 함께 대한민국의 태극기도 함께 거리로 들고 나왔습니다.
중계방송을 시청하던 우리 국민들은 베트남 축구팬들이 태극기를 흔들던 모습에 더욱 감동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과거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을 파병하여 베트남군대와 전쟁을 벌였던 일도 떠올렸을 것입니다.

박정희 정권이 미국의 요청으로 전투부대를 파병했을 때가 1964년부터 파리협정이 맺어진 1973년도 까지였으니, 지금으로부터 50여년전 일입니다.

서로 죽고 죽이는 파병전쟁까지 벌였던 국가였는데, 베트남 국민들이 태극기를 흔들었으니, 한편으로는 민망하기도 하고 너무나 감사하기도 한 일이었습니다.

스포츠 외교, 축구를 통한 국민외교의 엄청난 힘이 모든 것을 녹아버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베트남은 본래 우리와 동일한 유교문화권 국가입니다.

1945년부터 사용하고 있는 베트남어로 공식 명칭인 비엣남은 중국남부와 현 베트남 북부를 지배했던 왕조였던 남월, 즉 남비엣의 명칭을 거꾸로 쓴 것입니다.

베트남은 제국주의 침략이 극성을 부렸던 19세기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습니다.

또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일본의 침략을 받아 식민지 지배를 받았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열강들의 각축 때문에 베트남은 독립하지 못했고 남과 북이 분단되는 시련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호치민의 지도하에 독립운동을 벌였던 베트남은 프랑스군이 철수했지만,
이후 통킹만 사건을 시작으로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근 10여년간의 내전을 끝으로 1973년 미국은 물러가고 남북 베트남은 독립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우리가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것이죠.

당시 미국은 북베트남에 2차세계대전에서 사용하던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폭탄을 북베트남에 투하했었습니다.

그러나 베트남의 끈질긴 저항을 이겨낼 수 없었던 것이죠.

베트남전에서의 한국군 민간인 학살사건 때문에 역대 한국 대통령들은 베트남을 방문하면 유감과 사과표명을 했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지난 3월 베트남을 공식방문한 문대통령도 한국은 베트남에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양국 간의 불행한 역사에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베트남은 한국의 4대 교역국입니다.

베트남 입장에서는 한국이 2대 교역국입니다.

지난해 교역액이 639억달러로, 양국은 2020년까지 교역액 1천억달러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최근 청와대 게시판에는 박항서 감독을 베트남 명예대사로 임명하자는 청원이 있어 눈길을 끌고 있는데요.

이번 박감독의 역할은 한국과 베트남의 문화적 동질성을 회복하고 문화,경제, 스포츠의 교류와 협력을 강화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공맹사상의 근본인 관용과 배려의 정치사상이 스포츠 국민외교라는 틀로 양국 국민들간에 작용하여, 함께 번영하고 협력하는 한국 베트남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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