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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V 대한뉴스 월~금요일 19시 30분

6·25전쟁 69주년을 맞아 [유용화의 오늘의 눈]

회차 : 252회 방송일 : 2019.06.24 재생시간 : 03:33

유용화 앵커>
1000만의 이산가족과 500만의 전재민, 그리고 400만명이 넘는 사상자를 발생시켰던 6.25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69년이나 지났습니다.

6.25 전쟁은 국제적인 내전이라고 불립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 사회주의 국가들이 동북아시아 한반도에서 자신들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전쟁이라는 물리적 수단을 통해 세력다툼 현상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6,25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된 국가는 남북한과 미국, 중국, 소련, 일본 등 6개국입니다.
남북한과 미국, 중국은 직접 전쟁을 치뤘고, 소련은 무기를 제공했으며, 일본은 군수물자와 미군의 비행기가 이착륙 되는 공항을 제공했습니다.

전쟁은 민족을 하위-부차적인 개념으로 인지하는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일어났습니다.
후르시초프 회고록에 따르면, 6.25 전쟁은 “김일성이 도발한 전쟁이며, 스탈린도 김일성이 전쟁을 벌이지 않도록 적극 말리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1949년 3월 북한의 김일성과 박헌영은 두 차례나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침략하면 미군이 개입하기 전 3일 안에 남한을 점령할 수 있으며, 남한 내에서 인민봉기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스탈린을 설득하고, 중국공산당으로부터 약 5만명의 조선의용군을 지원받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모험주의적 공산주의자들이 주장했던 사실과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난 것이죠.
북한 전역이 미군의 공습으로 완전히 초토화 됐으며, 평양에는 무려 43만발의 폭탄이 투하됐습니다.
북한의 8.700여개 공장이 완전히 파괴 됐고, 공업생산은 전쟁 전의 약 64%로 줄어들었습니다.
남한의 경제 역시 약 42%가 파괴됐습니다.
피를 나눈 한 민족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치른 결과는 너무나 참혹했습니다.
보도연맹 사건과 국민방위군 사건, 거창 양민학살 사건 등은 전쟁과 이념이라는 이름하에 집단학살 된 사건들입니다.
전쟁 후에 남과 북은 더 이상 갈 수 없는 나라가 돼버렸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야만과 증오가 남과 북의 적대감으로 나타났습니다.
남한은 반공이 국시이고, 통치 이데올로기인 반공국가로 고착화 됐습니다.
이승만 독재체재와 박정희 군사정권은 반공을 통치수단으로 삼아 권위주의 국가를 건설하고,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파괴했습니다.
북한 역시 피비린내 나는 숙청을 감행한 뒤 김일성주의가 국민과 국토를 지배하는 전제적 독재국가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이제 69년이나 지났습니다.
남한은 그동안 민주화 투쟁과 경제발전을 통해 세계 선진국가 대열에 들어섰지만, 북한 주민들은 아직도 국제적 고립 속에서 가난과 싸우고 있습니다.

대북포용정책과 남북교류 확대 추진은 다시는 6.25 전쟁과 같은 참혹한 일이 한반도에서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 성과와 결실이 이제는 나타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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