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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V 대한뉴스 월~금요일 19시 30분

"유학 속임수에"···빼앗긴 13살 소녀의 꿈 [현장in]

회차 : 289회 방송일 : 2019.08.14 재생시간 : 04:20

유용화 앵커>
내일은 제74주년 광복절입니다.
최근에는 일본의 경제도발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을 당한 피해자들의 아픔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데요, 아직도 이들은 보상과 사과도 받지 못한 채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현장인에서는 강제징용 생존 피해자 어르신을 이리나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이리나 기자>
1944년 5월 나주보통학교 6학년에 다니고 있던 어느 날.
학급 반장이었던 13살 양금덕 학생은 일본인이었던 담임교사와 교장으로부터 한 가지 제안을 받고 큰 결심을 합니다.
공부는 물론 돈을 벌수 있고, 더구나 학교 선생님의 꿈도 이룰 수 있다는 말에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행 배에 몸을 실은 겁니다.

인터뷰> 양금덕 (91) / 강제징용 피해자
"학교서 중학교 보내준다고 했고 다녀오면 학교 선생님은 충분히 할거라는 그 희망으로 손을 들고 지원해서 갔다왔지. 아버지한테 물어보니 절대 못 가게 해서 (일본인 선생에게) 아버지가 반대한다고 하니 한번 간다고 했다가 안가면 어머니 아버지를 경찰서에 잡아 넣는다고 해서 어쩔수 없이..."

뱃길로 사흘만에 도착한 일본땅.
함께 온 고향 친구들과 함께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설레었지만, 일본인들이 이끈 마지막 목적지는 학교가 아닌 군용기를 만드는 나고야의 미쓰비시 공장이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시작된 군수 물자 생산 노역은 새벽같이 시작해 해가 저물고 깜깜한 밤이되서야 끝이 났습니다.
또 하루는 몸이 힘들어 휴식을 달라는 부탁에 돌아오는 대답은 "일을 하지 않으니 굶으라"는 말 뿐이었습니다.

인터뷰> 양금덕 (91) / 강제징용 피해자
"완성된 비행기를 페인트를 내가 다 칠해서 지금 어깨를 못써. 매일 병원만 가고 눈도 이렇게 페인트를 칠하면 떨어지고 날아오니까 수술을 둘 다 했어도 이쪽은 잘 안보이고 이쪽도 그렇지."

하루 온종일 중노동에 아무런 안전장비 없이 독한 화학제품을 다룬 탓에 할머니는 한평생 두통에도 시달리고 있습니다.

현장음>
"약 아니면 못살아 식전에 먹는 거 식사 후에 먹는 게 있고 아이고 약 먹는 것도 징하네."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와 꿈에 그리던 가족들을 만나 행복했던 것도 잠시.
할머니는 일본에 갔다 왔다는 이유만으로 오해와 차별 속에 눈물을 삼켜야 했습니다.

인터뷰> 양금덕 (91) / 강제징용 피해자
"길을 가면 시장에 사람 셋만 있어도 못 갔어요. 저기 위안부 간다고 아기들 손잡고 가도 위안부 자식이랑 위안부가 간다고 꼭 그런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싸우지도 못하고 어쩌겠어요. 그런대로 살아야지 지금까지 그 낙인이 찍혀서 살고 있어요."

그로부터 50여 년이 흐른 1999년부터 양금덕 할머니는 올해 아흔하나의 고령의 나이에도 자신과 같은 강제징용 피해자들과 함께 일본을 상대로 손해배상과 진정한 사과 요구에 그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습니다.

인터뷰> 양금덕 (91) / 강제징용 피해자
"우리는 여러분 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나이가 나이인 만큼 내일 갈지 모레 갈지 모르는 이때 눈물로 세월을 보냅니다. 언제까지 아베가 (배상 판결에 대한) 승낙을 사죄를 안 한다는 것은 우리 한국을 너무 무시해도 무시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배움이 좋아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던 13살의 소녀.

인터뷰> 양금덕 (91) / 강제징용 피해자
(만약에 다시 일본가기 전으로 돌아 가신다면 무얼 하고 싶으세요?)
"내가 일본만 안 갔어도 공부도 잘하고 그래서 무엇을 해도 살았을 거에요. 이렇게 고생을 안 하고 일본을 간 죄로 내가 지금까지 눈물로 사는 것이 억울해 죽겠네요."

(영상취재: 오민호 구자익 / 영상편집: 김종석)

올해로 광복 74주년.
강제징용 피해자 대부분은 생을 마감했고, 남은 이들은 기약 없는 배상과 진심 어린 사죄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현장인 이리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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