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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독립선언 100년의 의미 [유용화의 오늘의 눈]

방송일 : 2019.02.08 재생시간 : 03:52

유용화 앵커>
'조선 청년독립단은 우리 2천만 민족을 대표하여 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얻은 세계 만국 앞에 독립됨을 선언하노라'
100년 전 바로 오늘 2월 8일, 일본에 유학중이던 우리 조선의 학생들이 적의 심장부인 도쿄에서 우리 대한민국의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2월 8일 오전에 유학생들은 시내 곳곳에서 선언서 등을 일본에 주재하고 있는 각국 대사 및 공사와 일본의 정계인사 그리고 조선총독부,
각 신문잡지사 및 제 학자 등에게 우송했습니다.

대회가 열리는 청년회관은 이미 정복과 사복차림의 일본경관이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유학생들 6백여명은 대회를 강행하여 명주에 적은 선언서를 단상에 걸고 독립선언서와 결의문을 낭독하였습니다.

일경들이 대회장에 난입했고 양측의 난투극이 벌어지는 가운데 주모자들은 체포되었습니다.

일본은 자신들의 심장부에서 식민지 조선의 학생들이 벌인 독립운동에 놀라 60여명을 체포하였고, 최팔용 김도연 백광수 등 9명을 재판에 회부하여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한마디로 식민지배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을 각국 외교사절이 모여 있는 식민지 지배국가 수도에서 선언한, 대담하고 용기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2.8 독립운동은 일제강점기 하 우리 대한민국 학생운동의 효시적 모범을 보여줍니다.

보장된 출세와 눈앞의 부를 걷어차고, 대의적 명분과 뜻에 자신의 몸을 맡기는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우리 학생운동의 역사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선진적인 사례이기도 합니다.

1919년 2.8독립선언에서 보여준 학생들의 기개는 1926년 6.10 만세운동과 1929년 광주학생 운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자신의 몸을 던지는 선도적 투쟁을 특징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학생운동은 말없는 국민 다수를 감복시켜 운동 대열의 동조자로, 참여자로 전환시켰습니다.

상해에서 폭탄의거를 일으킨 윤봉길 의사 역시 광주학생 운동에서 감화 받았다고 하죠.

또한 학생운동을 통해 단련된 항일독립 투사들은 사회운동에 합류하여 민족운동의 지도자로 성장해 나가면서 국가의 미래를 개척해 나갔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에 유학했던 상당수의 학생들은 수학 후 국내로 돌아와 항일독립운동에 매진하게 됩니다.

2.8독립선언에 이름을 드러낸 유학생들 대부분이 상해임시정부와 국내 민족운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설움과 통분에 항거하며 일본제국주의 만행에 항거했던 1919년 2월8일, 3월1일이 이제 100주년이 되었습니다.

그분들이 없었다면 과연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의 현재의 우리 삶이 보장 되었을까요.

주권과 국민, 그리고 국토가 있어야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살수 있다는 역사적 사실.

100년전 국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불사르며 싸웠던 선각자들의 희생에 다시 한번 고개숙여 경의를 표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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