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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V 대한뉴스 월~금요일 19시 30분

5·18 역사의 심판 [유용화의 오늘의 눈]

회차 : 137회 방송일 : 2019.01.04 재생시간 : 04:04

유용화 앵커>
7일, 다시 법정에 서게 된 전두환 씨.

'사자 명예훼손 혐의 관련' 전 씨의 두 번째 공판일입니다.

전두환 씨는 5.18 당시 헬기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비난한 혐의로 기소되었죠.

그는 노인성 치매를 이유로 그동안 수차례 재판에 불출석 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 회고록도 출판하고 모교 체육대회에도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전씨가 5.18과 관련해서 뭔가 숨기고 회피하려는 인상이 강합니다.

안타깝게도 38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5.18 광주시민들을 학살한 발포명령 책임자가 누구인지 규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사망한 사람은 166명, 행불자는 166명, 부상 뒤 숨진 사람은 101명, 부상자는 3천 139명 입니다.

공수부대 등 진압군들이 무차별 사격을 가해서 발생한, 처참한 비극의 현장이었죠.

그런데 발포 최종책임자가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우리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민간인을 학살한 정치군인들이 전두환 노태우 등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신군부 세력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을 법으로 응징하기에는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1988년 국회청문회,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수 없다’라는 검찰의 변명과 공소권 없음 이라는 결정.

이후 김영삼 대통령의 특별법 제정 지시 등으로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 세력은 1996년이 되어서야 역사의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반란죄와 내란죄, 그리고 수뢰죄가 적용되어 상고심에서 전두환은 무기징역, 노태우는 징역 17년이 확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구속된 지 2년여만인 1997년 12월 국민대화합을 명분으로 특별사면을 받아 감옥에서 나오게 되었죠.

최근 전두환 씨에 대한 재평가가 다시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부인인 이순자 씨는 그가 7년 단임제를 실행했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또 전두환 씨는 2012년에, "미국식 민주주의를 했다. 대통령 2번 하려다 모범을 보이려 1번만 했다"는 발언도 최근 다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최근 1980년 5월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광주를 찾아 진압방식을 논의했다고 적은 기록물이 38년 만에 처음으로 발견되었습니다.

또 전 씨는 대기 중인 계엄군 사병들에게 중식용 소 7마리까지 지원하는 ‘잔치판’을 열어주고 격려금 3백만 원을 전달했다고 합니다.

지난해 2월 5.18 진상규명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습니다.

군의 최초 발포와 책임자 및 경위, 헬기 사격과 사격명령자, 계엄군 성폭행 등을 규명하도록 한 법률입니다.

그러나 진상규명 위원회는 국회에서 아직 구성도 되어 있지 못합니다.

2년여 형을 살고 나와, 회고록도 출판하고, 재판에도 마음대로 출석하지 않는 전두환 씨.

대다수의 광주시민들은 보안사령관으로서 최고 권력자였던 그가 최종발포 명령자였을 것이라고, 심증을 갖고 있습니다만 그는 강하게 부인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한국의 민주주의를 일구었다고 선전하고 다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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