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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100년과 백범 김구 [유용화의 오늘의 눈]

KTV 대한뉴스 월~금요일 19시 00분

임시정부 100년과 백범 김구 [유용화의 오늘의 눈]

등록일 : 2019.04.11

유용화 앵커>
오늘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이 발족한 날이며, 내일 4월 11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날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하면, 백범 김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임시정부의 문지기를 자처했던 김구선생의 파란만장했던 일생은 바로 우리 대한민국이 자유와 독립을 얻어내기까지의 한국현대 정치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할 것입니다.

백범 김구선생은 20대의 젊은 나이에 황해도 해주의 동학 접주가 되어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했던 인물입니다.
1896년 치하포에서 국모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는다는 신념으로 변장한 일본장교 스치다를 맨손으로 때려 잡아 죽이기도 했죠.

나라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자 고향에서 교육사업에 전념하던 김구는 1911년 105인 사건으로 체포되어 4년여 동안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이후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활동을 했던 김구 선생은 임시정부 경무국장, 내무총장, 주석을 역임했었습니다.

임시정부가 좌파의 분열행동으로 혼란과 무기력에 빠졌을 때, 김구 선생은 임시정부 내 한인애국단을 창설하여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진두지휘했었죠.
목숨을 내놓고 수없이 감행됐던 한인애국단의 작탄 의거가 침체에 빠져있던 임시정부를 살려내고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이정표를 세웠음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1941년부터 미국과 일본의 전쟁이 시작되면서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국제정세는 급박하게 돌아가게 되죠.
일본의 패전도 예상됐습니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전후 처리 사안으로 한국을 40년 신탁통치한다는 계획을 관철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김구 선생과 임시정부 요원들은 중국 국민당 장개석 총통과 손을 잡고 외교활동을 펼쳐 1943년 11월 27일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적절한 시점에 보장한다는 카이로선언을 얻어냅니다.
식민지 국가 중 미영중 3국 정상들이 독립을 보장한다고 약속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했습니다.
그러나 1945년 12월 미국과 소련은 얄타회담에서 4년 신탁통치안을 다시 합의하죠.
이에 김구 선생은 비상국민회의를 조직하여 전 국민적 반탁운동을 벌여 강대국들의 신탁통치안은 좌절되고, 1948년 합법적인 대한민국정부가 탄생된 것입니다.

김구 선생은 1949년 6월26일 총탄에 흉거하시기 전까지 남북 통일운동에 전념하셨죠.
생전에 김구선생은 남북이 갈라지면 남북간 전쟁이 일어날수 있다고 예언하기도 했습니다.
70여년전 백범김구 선생이 주창했던 통일은 아직도 갈 길이 멀고 험합니다만, 김구 선생의 중도개혁적 정치사상은 지금도 우리에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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