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은 어찌 보면 우유부단의 표상으로도 보일때가 있습니다.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모습이니까요.
그러나 극단적인 방법일 수 있는 이분법적인 논리는 종종 편을 가르며 치유불가능한 상처의 골을
깊게 하기도 합니다. 분명한 결론이 필요한 측면에서 보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중도성향을
그렇게 볼숟호 있겠지요.
정치나 사회나 문화 등 인간사회 모든 분야에서도 사람들은 곧잘 분명한 것을 선호한 것도 사실
입니다.
중용은 한발짝 물러서서 관조하는 숨고르기를 하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지요.
불편부당은 회색논리가 아닌 화합의 마당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