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박사 한규철 교수, KTV 특강
- 발해는 당나라 지방정권 아닌 자주국
- 발해사는 고구려 계승한 엄연한 우리 민족사
KTV(영상홍보원)는 발해사 분야의 권위자 한규철 교수의 “발해사 바로 알기” 특강을 시리즈로 마련해 방송하고 있다.
최근 고구려에 이어 발해사마저도 당나라의 지방 정권으로 간주하며
중국 역사의 일부분으로 억지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해 한중간 역사전쟁이 일고 있는 시점에서 특별기획한 것이다.
매주 화요일 저녁 6시 20분 방송되는 [특별한 강의]의 ‘역사특강’에서 국내 발해박사 1호 한규철 교수가 발해의 건국과정부터 정치구조 및 종족 구성, 문화 유적 등을 중심으로 발해사를 강의한다.
이를 통해 발해는 당나라의 지방 정권이 아닌 자주적인 독립국가로서 고구려를 뚜렷하게 계승한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발해는 우리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보유했던 강국이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무관심 속에서 주변국가들이 발해사를 자기네 역사로 왜곡시키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고 보는 한교수는 9강까지의 강의를 통해 발해는 종족적·영토적·문화적 입장에서 엄연한 우리 민족사의 일부라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시켜 준다.
즉 발해사는 엄연한 한국사의 일부라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발해에 관한 우리의 역사관을 재정립하고 민족적 자존심 회복은 물론, 발해사 보호의 민족적 의무를 깨닫게 될 것이다.
♦ 강연자 - 한규철 교수(발해박사 1호)
•주요 경력 : 現 부산경남사학회장/경성대 사학과 교수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공동대책위원회 공동대표
•주요 저서 : 「발해의 대외관계사 - 남북국의 형성과 전개」
(공저)「발해사의 종합적 고찰」/「한국사 3」
/「강좌 한국 고대사 4」
♦ 강연 내용(매주 화요일 저녁 6시 20분)
제 1강(11월 2일) - 발해사란 무엇인가
이백 수십 년 간 동아시아에서 강력한 왕조로 존재했던 발해의 존속기간, 위치 및 영토 등을 중심으로 한반도 주변국가들의 발해사 연구 현황, 중국의 동북공정의 실체를 점검해 본다.
제 2강(11월 9일) - 발해는 이렇게 세워졌다
발해는 고구려 멸망 후, 남은 고구려 유민들이 30년간의 항쟁을 통하여 세운 국가였다.
이 시간에는 신라통일의 의의 및 한계, 당나라의 고구려 지배책략과 저항적 고구려 유민의 발생, 발해의 건국과정 등을 중심으로 발해국의 의의를 조명한다
제 3강(11월 16일) - 자주적인 왕조 발해
발해는 전제적인 정치구조와 자주성을 가진 국가로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으며, 당나라와의 교류도 엄연히 왕조 대 왕조로 이루어진 독립국가였다. 결코 당나라의 지방정권은 아니었다는 것을 반증할 수 있다.
제 4강(11월 23일) - 발해의 고구려 계승성Ⅰ / 영토와 종족
발해는 옛 고구려 땅을 비롯하여 중국의 요동 및 러시아 일대까지 넓은 영토를 지배했다.
한교수는 “발해의 대다수의 피지배층이 말갈족이라는 이유로 지금까지 발해사를 우리 역사로 인정하지 않는 학자들도 있지만, 말갈족의 70%이상이 고구려계이기 때문에 우리의 역사로 보는 것이 옳다”고 강조한다.
제 5강(11월 30일) - 발해의 고구려 계승성 Ⅱ: 문화
고분이나 언어같은 문화적 측면에서 발해와 고구려는 유사성이 많았다.
발해인들은 고구려어를 사용했던 것으로 생각되며, 석실묘와 석곽묘를 사용하던 고구려 지배층과 같은 고분 축조를 하였고, 고구려인들이 사용하던 온돌을 사용했다.
이러한 문화적 측면에서도 발해 주민은 고구려인의 후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 6강(12월 7일) - 발해의 유적과 그 문화
고구려인의 주거특징인 온돌장치가 발해주민의 유적에서 발견되는 등, 발해와 고구려의 유적은 일치하는 점을 집중 조명한다.
또한 중국의 발해유적 세계문화유산 등재작업의 의도 및 그에 따르는 영향도 살핀다.
제 7강(12월 14일) - 남북국 시대의 전개 : 신라와 발해의 교섭과 대립
통일신라와 발해가 병존한 7세기 후반부터 10세기 전반의 시기인 남북국 시대에서 발해, 신라, 당나라의 유기적 관계를 알아본다.
발해는 융성기에 대외관계는 활발하였으나 신라와의 관계는 대체로 소극적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민족의 문화가 융합 발전되지 못하는 부정적 영향을 가져왔음을 알 수 있다.
제 8강(12월 21일) - 발해 멸망과 발해 유민
발해가 멸망한 후에도 발해유민들은 옛 고구려 유민들처럼 오랫동안 발해국을 되찾기 위해 줄기찬 투쟁을 벌여 정안국, 후발해 등의 소국을 창건하기도 하였다.
발해멸망에 따른 후삼국의 역학관계 변화, 거란 및 여진의 발해 유민, 한국사의 발해사적 위치와 인식 문제를 살펴본다.
제 9강(12월 28일) - 발해의 역사적 지위
고구려를 계승 발전시킨 발해, 동방일각에서 해동성국의 위용을 떨치며 2백 수십 년 간 존재했던 발해의 역사적 지위를 살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