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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이 체결되기까지 걸린 회담 기간은 무려 2년이나 됐습니다.
세계 역사상 가장 길었던 회담 가운데 하나로 기록돼 있는데요, 당시 상황을 김형규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기사내용]
계속되는 전쟁에 부담을 느낀 당시 국제연합군과 공산군측은 전쟁발발 1년 여만인 1951년 7월 개성에서 첫 정전회담을 갖습니다.
하지만 본회담은 그로부터 1년이 지난 1952년 7월 열렸고, 같은해 10월엔 장소를 판문점으로 옮기게 됩니다.
당시 남한은 정전협정에 반대하는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INT> 박정인,당시 12사단 1대대장
“이장부터 면장, 공무원까지 사람들을 다 인민재판으로 죽였다니까, 그래서 공산주의에 대해선 그 땐 요즘과 달라서 전쟁이 끝난다. 그런 생각은 안해. 그 놈들은 없애버려야 한다는거야.”
전쟁포로 문제 등으로 지지부진하던 회담은 1953년부터 활발해 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됐습니다.
유엔군 수석대표 윌리엄 해리슨 중장과 북한 수석대표 남일은 형식적인 악수나 인사 한 마디 없이 조인서를 교환했습니다.
협정에는 군사분계선 확정과 비무장지대 설치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독위원회 설치에 이어 전쟁 포로 교환등 군사부문과 정치회담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INT> 박정인,당시 12사단 37연대 1대대장
“(20개 사단을 증강할 수 있는) 군사적 원조에 경제 부흥 지원도 받기로 해서 이승만 대통령이 (휴전회담에) 동의를 한 겁니다.“
정전협정 체결로 남북 사이에는 현재의 비무장지대와 군사분계선이 그어졌습니다.
또 유엔과 공산군 장교로 구성된 군사정전위원회 본부가 판문점에 설치됐고, 스위스.스웨덴,체코슬로바키아.폴란드로 구성된 중립국감시위원단도 설치됐습니다.
전쟁이 시작된 지 3년 1개월, 그리고 2년 동안 760여 차례의 만남 끝에 체결된 정전협정..
우리 민족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6.25전쟁은 세계 역사상 가장 긴 회담이라는 기록을 남기면서 그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KTV 김형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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