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에서 주관하는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백민 황상규 선생이 선정됐습니다.
황상규 선생은 일제의 탄압에 맞서 결사단체를 조직하는 등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분인데요.
올해는 광복 70년을 맞는 해여서 그 의미가 남다릅니다.
유한권 국민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사내용]
일제 탄압에 온 몸으로 맞선 황상규 선생 그의 활동과 당시 상황이 담긴 사진과 자료들이 광복 70년을 맞아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국내외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해 온 백민 황상규 선생은 1919년 2월에는 우리나라 독립을 선포한 <대한독립선언서>에 서명한 해외 독립운동가 39명 중 한 분입니다.
인터뷰> 강희서 / 평택시 안중초 2학년
"친구들과 함께 독립운동 할아버지들의 활동을 조사하러 왔어요."
1890년 7월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황상규 선생은 노동야학의 교사를 거쳐 1913년 이후 대한 광복회 등의 비밀결사조직에서 항일독립운동에 참여했습니다.
그는 열여덟살때 부터 독립운동의 뜻을 품고 청년학도들에게 나라의 독립과 애국애족정신을 일깨우기 시작 했습니다.
일제의 탄압으로 독립운동 조직이 와해되면서 중국으로 망명하는 상황을 담은 지도는 당시 고통을 전해줍니다.
선생은 중국에서 조선독립군정사 회계책임자로 활동하면서 군자금을 조달해 독립군을 지원했습니다.
인터뷰> 조은경 학예사/ 독립기념관
"탄압에도 불구하고 비밀결사단체에 동참하셨고요. 의열단을 조직하고 직접 의열투쟁에 참가한 애국지사입니다."
1919년 11월 중국에서 의열단(義烈團)을 결성한 선생은 그 해 12월 국내로 들어와 일제식민통치기관에 대한 총공격을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거사계획이 사전에 발각되면서 붙잡혀 '폭팔물 취체규칙 위반'으로 7년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선생은 감옥에서 혹독한 고문을 겪으면서도 혀를 깨물어가면서 자백하지 않아 백지기소된 사건으로 유명한 일화를 남겼습니다.
인터뷰> 권고은 / 경기 안성시
"독립 70주년을 맞이해서 아이들에게 역사의식을 고지시켜주기 위해서 왔습니다."
1926년 4월 옥고를 마친 후 선생은 밀양지역 사회운동을 주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이 벌이다 1931년 9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부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선생의 뜻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습니다.
황상규 선생의 생애와 독립운동 활동을 담은 특별전은 이달 말까지 열립니다.
정부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매월 이달의 독립 운동가를 선정해 업적을 기리고 다양한 기념행사를 열어 광복의 의미를 살려나갈 계획입니다.
국민리포트 유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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