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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V 국민방송

사막에 세운 한국의 꿈(다큐 4부)
열사의 사막인 중동에서 땀 흘렸던 한국인 건설 노동자들은 지금 어디에, 어떤 모습을 살고 있을까? 그들은 이름 없이 세월 뒤편으로 물러났지만, 1970년대 석유파동으로 인해 나라의 경제가 크게 흔들리고 어려울 때의 위기를 기회로 만든 숨은 영웅들이다. 대규모 건설 현장 수주 경험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이 당시 최대 해상 공사였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베일 산업항, 20세기 최대 토목 공사로 불리는 리비아 대수로를 성공적으로 건설할 수 있었던 저력 중 하나이기도 하다. 가족의 생계와 국가의 명운을 어깨에 지고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구슬땀을 흘렸던 중동 건설 근로자들. 이들이 일궈낸 한국 건설의 신화를 만난다.

1. 프롤로그 & 한국 건설의 신화
- 주베일 산업항부터 리비아 대수로 건설까지, 열사의 사막에서 이룩한 해외 건설! 불가능 위에 세워진 한국 건설의 신화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2. 중동행 비행기에 오른 사람들
- 인천문화관광해설사로 제2의 인생을 사는 김창해 씨
- 40여 년 전 정수 직종으로 떠난 이라크 알 무 사이브 화력발전소 건설 현장
- 열사의 사막을 견딘 이유는 오직 가족의 생계
- 당시 그의 엽서와 추억의 물건을 찾아 떠난 국립항공박물관. 7, 80년 전 중동 건설 붐을 항공 문화 측면에서 조명한 <중동행 비행기에 오른 사람들> 특별전에 참여하며 기증했는데.. 창해 씨가 가족과 주고받은 엽서와 당시 근로자들 숙소에 비치되어 있던 월간지 밀물까지 살펴본다.

3. 중동행 비행을 통해 중산층에 오른 정경석 씨 부부
- 1984년, 신혼 3개월 만에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난 정경석 씨. 경석 씨 역시 가족의 생계를 진 가장이자 회사의 강력한 요청을 받아 관리직으로 중동에 파견됨.
- 무리한 철야 근무로 인해 몸에 이상이 생겨 결국 귀국한 경석 씨, 현장에선 고되고 힘들었지만, 당시 한국 근로자들의 2, 3배에 달하는 월급을 지급받았던 것이 신혼 초 셋방살이를 벗어나게 했고, 지금 윤택함을 만드는 데 귀한 자산이 되었다고 증언한다.

4. 해외 건설 10대 프로젝트, 주베일 산업항 건설
- 이처럼 7, 80년대 해외 건설 근로자들이 보내오는 송금액 덕분에 당시 한국의 외화 가동률은 70%에 이르렀다. 이 귀한 돈은 한국 경제의 피가 되었고 세계 2위의 해외 건설 수주국에 이르는 초석이 되었는데..
- 이 위업을 달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설 현장이 바로 주베일 산업항.
- 조수 간만의 차가 큰 페르시아만에 세운 주베일 산업항을 수주한 현대 건설은 낮은 수주액을 돌파하기 위한 비장의 한 수로 울산 현대미포조선소에서 높이 36m 무게 550톤의 자켓 89개를 제작해 사우디아라비아로 해상 수송하는 계획을 세운다.

5. 해외 건설 근로자를 위로했던 연예인 위문공연단
- 고되고 힘들었던 주베일 산업항. 당시 노무 갈등으로 인한 분장이 현장에 있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해외건설협회는 연예인 위문단을 조직해 중동으로 보내게 된다.
- 당시 연예인 위문단으로 떠났던 가수 서수남 씨와 단장 홍창기 씨를 만났다. 연예인 위문단의 공연은 고국을 그리워하던 많은 해외 건설 근로자에게 큰 위로가 됐다는데.. 눈물과 환호가 대단했다는 사막에서의 공연 일화를 들어본다.

6. 20세기 최대 토목 공사 리비아 대수로 공사
- 주베일 산업항의 성공으로 중동에서 신뢰를 쌓은 우리나라는 아직 그 기록을 깨지 못한 20세기 최대 토목 공사! 리비아 대수로 공사까지 수주하게 된다.
- 리비아 대수로 공사 현장의 토목 엔지니어로 일을 시작해 임원이 되기까지 20년 넘게 사막을 누빈 홍창기 씨. 그를 통해 사하라 사막 4,000km를 관통해 대수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있었던 난관 극복 스토리와 통수식 당시 리비아 국민의 환호와 열광이 얼마나 대단했었는지 당시 이야기를 들어본다.

7. 중동 근로자의 또 다른 이름, 아버지
- 해외 건설 근로자가 쌓아 올린 수많은 기적 뒤에는 그리움과 기다림의 시간이 있다.
- 중동 건설 근로자였던 조정형 씨의 아들 조성현 씨는 초등학생 때 머나먼 타국으로 떠나 해외 건설을 했던 모습이 여전히 생생하다. 지금은 곁에 없는 그리운 아버지가 이라크 건설 현장에서 귀국하면서 선물로 사 오셨던 카메라는 가족의 생활이 윤택해졌다는 증거다.

8. 에필로그
-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7, 80년대 헌신과 희생을 기꺼이 받아들였던 해외 건설 근로자들. 지금 우리가 이룩한 빛나는 경제 발전, 발을 디딘 이 터전은 묵묵히 자신의 삶을 감당했던 그들의 땀과 눈물 위에 세워졌다.
-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해외 건설의 패러다임을 열어가고 있는 K-건설! 또다시 펼쳐질 한국 건설의 신화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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