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 평생 같은 기억의 끈으로 묶인 사람들. 그들이 일년에 한번 모이는 날
- 그들을 태운 고속버스가 향하는 곳은? 그들을 일년에 한번 소환하는 것은?
2. 1970년 7월 7일 그날
- 55년 전, 그날. 대구 공설운동장. 온 나라가 축제분위기
- 국력을 총동원해 국토의 대동맥을 뚫은 그날, 바로 경부고속도로를 2년 5개월 만에 완공한 날. 기적이라 불리는 이 대공사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3. 그날 그현장에 있었던 박경부씨
- 완공식날 훈장을 받은 박경부씨. 그또한 경부고속도로 완공을 평생 잊지 못하는 1인.
-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공무원이 된 그가 차출된 현장이 경부고속도로 현장
- 경부고속도로는 평범했던 그의 삶에도 큰 계기가 되었다고 하는데.
4.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해야만 했던 이유
- 그렇다면 당시 경부고속도로 건설 배경은?
- 50년대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를 재건하고, 60년대에는 근대화가 목표였던 국가적인 상황
- 당시 우리나라 교통수단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철도. 하지만 턱없이 열악했던 교통 인트라
- 고속도로 건설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으나, 경제적인 상황이 좋지 않았던 나라
- 구상만 하던 고속도로를 구체화하는 계기, 1964년 12월 6일 대통령의 서독 방문
5. 가장 큰 난관, 경부고속도로 건설 자금은 어떻게 조달했는가
- 2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과 경부고속도로 완공을 국가적인 목표로 세우는 정부
- 고속도로 건설에는 필요한 자금을 만들기 위한 구상에 들어가는데
- 하지만 외자를 도입하기 위한 계획이 모두 실패에 돌아가자, 국내 자본만으로 공사를 하기 위한 계획에 착수
6. 공사 착수, 하지만 전쟁터를 방굴케 했던 현장
-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1968년 2월 1일 공사 착수
- 전국에 건설인들이 다 동원, 당시 국내 16개 건설사와 공무원들이 투입. 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해 투입된 이들이 군인들. 공병대 군인들이 3개 구간 공사구역에 투입
- 그때 공사 현장에 투입되었던 이, 김동주씨가 기억하는 경부고속도로 현장은?
7. '우리도 할 수 있다'를 보여준 '우리는 건설한다'
-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단순히 길을 내는 공사 그 이상의 의미
- 전쟁을 치르고, 폐허 속에서 자력갱생하려고 발버퉁 치는 이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계기가 되었음을 증언하는 사람들
8. 77명의 희생자들
- 하지만 최장기간, 최단기간 공사 기록이라는 성과뒤에는 이름없는 이들의 희생이 있었다
- 당재터널을 비롯해 경부고속도로 구간 전체의 크고 작은 사고들로 목숨을 잃은 이들은 총 77명
- 경부고속도로 완공을 기념하는 준공탑 뿐 아니라, 77명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위령탑이 세워진다. 그리고 일년에 한번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된 그날을 즈음해서 위령제가 열리는 현장, 그곳에서 유족들을 만난다
9. 고속버스 시대가 열리다
- 경부고속도로가 뚫리고 국토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 날개를 단 화물운송업을 비롯해, 고속도로의 꽃인 고속버스 시대가 열리는데
- 고속버스로 전국을 1일만에 다녀올 수 있는 1일 생활권 시대가 열리고
10. 그레이 하운드를 아십니까
- 당시 고속도로를 달렸던, 우리나라 최초 프리미엄 고속버스 그레이 하운드를 아십니까
- 고속버스는 새로운 직업을 창출하기도 해. 고속버스 기사뿐 아니라 고속버스 안내양 공개 채용에는 늘 경쟁률이 높았다고
11. 경부고속도로가 바꾼 것들
- 고속도로를 따라 산업단지들도 들어서면서, 경제성장률을 가속화시키는 기폭제가 됨. 자동차 산업도 그때부터 부흥하기 시작했다고
- 경부고속도로 이후 전국적으로 뻗어나간 고속도로들. 현재 우리나라는 국토 면적 대비 가장 많은 고속도로를 보유한, 교통 선진국
12. 에필로그
- 올해도 어김없이 7월 7일을 즈음해 경부고속도로 완공 기념식에 참석한 경부고속도로 건설인들. 한해가 다르게 인원도 줄고, 그들 또한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지만, 그들이 지금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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