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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V 국민방송

산업의 쌀, 쇳물이 나오던 날(다큐 2부)
미국 피츠버그 철강단지에서 시작된 꿈은 포항제철 계획으로 이어진다. 당시 청운의 꿈을 품은 채 철강업에 투신했던 젊음들, 온갖 난관을 이겨낸 그들이 있었기에 1973년 6월 8일, 마침내 포항제철의 고로에 불이 지펴진다. 이 철강신화를 통해 현재 대한민국은 중화학공업부터 소프트파워의 힘을 과시하게 되며 대한민국 영광의 역사를 밝히고 있다. 더불어 철강 산업의 역사를 이어가는 이들을 통해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도 듣고자 한다.

1. 프롤로그 & 첫 쇳물이 쏟아져 나온 날
- 1970년 4월 1일 세워진 포항제철 착공식
- 20세기 산업의 젖줄 쇳물을 차지한 대한민국의 역사
- 첫 쇳물이 쏟아지던 1973년 6월 9일, 어떠한 과정을 거쳤을까?

2. 꿈은 거대하나 시작은 미약하다, 일관제철소 건설의 시작
- 1960년대 당시 제철소라곤 고작 한 곳, 삼화고로
- 대한민국 철을 만들어야겠다는 꿈 하나로 이룬 대한제철소 추진위원회
- 제철소를 본 적도 없는 34명의 젊은이들이 모인 대한제철소 추진위원회, 제철소 건설은 어떻게 이루어지게 될까?

3. 아무도 믿지 않았던 일관제철소 건설
- 1958년 자유당 정부 시절부터 종합제철 건설 계획을 세우나 번번이 좌절
- 철강 산업을 기초 소재로 인식, 종합제철사업 건설을 구상
- 1966년 12월 미국 코퍼스를 중심으로 5개국 8개사가 참여하는 KISA 정식 발족
- 건설자금 1억 3천만 달러, 연간 60만 톤 제철소 목표

4. 작은 시작, 영일만 황무지에 온 국민의 뜻이 모이다 - 한적한 인구 5만 명의 포항이 제철소 입지 부지로 선정
- 대한민국이 잘 되리라는 희망 하나로 정든 땅을 떠난 이주민들 이야기
- 모래 바람과 사투하며 일관제철소를 건설한 토목 담당자 이야기

5. 위기와 극복, KISA 좌초와 신화의 시작
- 한국의 종합제철 건설을 위한 차관 제공에 부정적으로 돌아선 KISA와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 대일청구권 자금 전용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차관과 기술을 제공 받기로 협약
- 생산 규모를 60만 톤에서 103만 톤 급으로 확대. 최종적으로 10년 안에 세계 유수의 제철소에 견줄 대담한 계획을 세운다

6. 실패하면 죽는다는 심정으로, 돌관공사와 기술력의 쟁취
- 3년 3개월 안에 끝내야 한다는 목표 아래 10개 공장과 11개 설비 공사 시작
- 24시간 밤낮 없이 돌관공사를 강행한 이유
- 시대의 풍경을 이룬 중공업 산업역군들의 등장
- 한편, 일본의 기술력을 습득하기 위해 한국 기술자들이 기울인 노력들은?

7. 조선업의 심장, 철강
- 1970년대 유례없는 슈퍼사이클을 맞이, 이와 함께 시작된 유조선
- 세계와 겨룰 수 있는 배를 완성하기 위해 제철소와 조선소를 동시에 건설
- 1972년, 애틀렌틱 배런호 등장으로 중화학공업의 전환을 이룬다

8. 1973년 6월 9일. 쇳물이 나오던 그날
- 쇳물을 뽑아낼 고로 착공을 시작으로 원료가 입항하며 꿈에 한발자국 더 다가가는데..
- 1973년 6월 8일, 모두가 쇳물이 나오길 초조하게 기다리는 상황
- 파이프가 망가지며 시작된 피말리는 사투
- 사투 끝에 1969년 7월 3일 새벽 7시 30분 첫 고로가 쏟아져나온다

9. 조선업의 성공적인 시작과 중공업 시대 개막
- 첫 쇳물이 쏟아져 나온 이후 세계를 놀라게 한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룬 대한민국
- 포항제철의 성공을 뒤이어 새로운 역사를 이어가는 서광일 명장의 이야기도 듣는다

10. 에필로그
- 대한민국의 역사를 온몸으로 살아낸 이영직 포항제철 창립멤버들이 젊은 세대에게 전하는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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