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가 되자 논단 10월8일 금요일 2003년
제주 민속마을에 가면, 나무둥치에 볏짚을 묶어 댕기처럼 땋아 그 끝자락
을 항아리에 넣어 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비가 오면 나무 등걸을 타고 내린 빗물을 받아서 생활 용수로 쓰나 보다고
짐작하는데,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운 뒤에 개구리 한 마리를 넣어 놓으면
그 물이 정화되어 식수로 쓸 수 있다는 이야기를 안내원이 들려주었습니
다.
개구리의 헤엄으로 물이 휘저어지는 바람에 산소가 공급되어 오래 둬도 썩
지 않는다는 사실을 삶에 적용시킨 조상들의 슬기에 얼마나 감탄했는지 모
릅니다.
우리네 조상들의 생각이 이렇듯이 요즘 우리 어린이들의 슬기로움도 무척
대견합니다.
소꿉 요리에 재미를 붙여 조리사 자격증을 딴 어느 초등학교 6학년 여학
생, 빌 게이츠를 넘보며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에 열중해 화제가 된 어린이,
그리고 제때에 밥을 먹지 않는다고 꾸중을 들어도 책을 놓지 못하는 독서
왕... ...
우리는 이런 친구들에게 흔히 '책벌레' '공부벌레'처럼 '∼벌레'라는 별명
을 붙입니다.
이 때의 '벌레'란 어떤 일에 열중하는 사람을 빗대어 이르는 말입니다.
이 '∼벌레'들은 저마다 특기나 재능을 위해 꾸준히 노력했고, 그들의 의지
로 일찌감치 무언가를 이뤄 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 분야에 정신 없이 빠진 사람들을 한편에서는 곱지 않은 눈길로 바라보
기도 하지만,
세상은 이런 '∼벌레' 같은 열정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더 발전하며, 더 풍
요롭고 편리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미국 타임지는 '2002년 베스트 발명품'으로 미래 자동차·먹는 백신·세 발 스
쿠터·무선 헤드폰 등 30여 가지를 선정 발표했습니다.
발명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특권이 아닐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발명품은 '∼벌레'라는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긍정적인 사고와 무언가를 이뤄 보려는 집념을 가진 '∼벌레'라
는 별명으로 불리는
이들에 대한 기대와 존경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우리 조상들이 개구리 한 마리도 삶의 지혜로 활용했듯이
여러분 또한
자기 할 일에 최선을 다할 때만이 자기는 물론 남에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
다는 것을 명심하기바랍니다.
이 가을날 아침, 어른들의 세계는 시끄럽다 하더라도 여러분들은 세상에
서 가장 귀하고
큰 쓰임새가 될 수 있는 '∼벌레'라는 이름을 가진 꿈을 가꾸어 가는 한 주
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박윤호/대구계성 초등학교교장 / 소년한국일보/논단/한 주일을 열며
2003년 10월 8일 수요일/ 애독자 옮겨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