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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의견

박제민의 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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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박제리(박제리**)
등록일 : 2003.05.01 13:48
저희 오빠를 소개 합니다.

박제민 : 1997 경기대학교 동아리 연합회 회장
1998 경기대학교 총학생회장
1998 서울 총학생연합회 의장
수배생활 5년째
선천성 고도근시로 실명할 위기에 처해 있으며, 원형탈모로 두피가
벗겨지고
얼마전 다리부상으로 다리에 철심을 박는 대수술을 함


이렇게 인터넷에 글을 쓰기까지 정말 많은 용기가 필요 했습니다.
우선 제 소개를 하자면 서울에 살면서 디자인을 하고 있는 한 평범한 직장
인입니다.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 혹시 이런일 있지 않으세요?
항상 즐겁고 행복한 일들이 가득해서 너무 기쁜 나날들이 계속되는데 마음
속이 자리잡고 있는 하나의 불안한 생각을 들춰보면 하루종일 그불안감에
휩싸여 즐겁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어지는 그런기분.....
저는 요즘 화창한 봄날임에도 불구하고 혼자만 싸늘한 겨울의 한가운데에
서있는 기분입니다.

저에게는 소중한 가족이 셋 있습니다.
항상 즐겁고 낙천적이신 아버지와 꼼꼼하시고 친구 같으신 어머니... 그리
고 우리집의 기둥이자 저의 마음에 겨울을 만든 우리 오빠..
어린시절 저는 항상 오빠에게 맞고 다녔습니다.
오빠는 항상 저를 쥐잡듯이 잡았고 그런 오빠는 저에거 정말 다가가기 힘
든 존재였습니다.
오빠는 키가 무척이나 컸습니다.
유치원에 '재롱찬치'사진을 보면서 남들보다 머리가 한개 더 있는 안경을
쓰고 익살스럽게 웃는 오빠의 모습에 혼자 킥킥 웃곤했습니다.
그로부터 이십여년이 지났습니다.
오빠의 사진은 어떤 경찰서 에서나 볼 수 있는 지명수배자 명단에 올라와
있습니다.
어디에서 그런 험학한 사진을 찍었는지...
남들이 보면 폭력전과자로 보였음직한 얼굴을 보고.....
우리 가족은 한동안 말을 잃었습니다.
오빠는 98년도에 경기대학에 들어가 동아리 염합회 회장, 경기대학 총학생
회장, 서총련 의장직을 맡으면서
나라에서 말하는 A급의 수배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체포와 동시에 특진에
된다고 하더군요.)
제가 고등학교 2학년때부터 지금까지도 오빠를 마음껏볼수도 없게 되어버
렸습니다.
경찰들의 끊임없는 미행과 멸절때만되면 목소리를 변조해 오빠가 다쳤다
고 이야기를해 가족의 애를 태우고...
우리 가족은 항상 도총과 미행을 당하면서 5년을 살았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면서 정말 우리나라에서 이런일이 일어날까 라는 생각을 하
시겠지만 저의 이야기는 모두 사실입니다.

저는 한총련이 아닙니다.
한총련에 대한 지식도 많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빠의 동생입니다. 오빠의 동생이기 때문에 이렇게 글을 올리
고 오빠의 사면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중입니다.

저희 오빠는 선천성 고도 근시로 유치원때부터 골이 깊은 안경을 쓰고 다녔
습니다.
고등학교에서도 맨 앞자리에서 망원경을 쓰고 공부를 하였고 지금은 더이
상 안경의 존재가 필요 없게 되어버려 책을 읽거나
신문을 읽을때는 안경을 벗어 버려야하는 그런정도의 악화된 시력을 가지
고 있습니다.
오래된 수배 생활로 시력은 점점저하되고 스트레스로 머리에 원형탈모가
생겨 머리가 훵 들여다 보입니다.
얼마전에 다리가 부러져 몰래 수술을 받고도 통원치료조차 제대로 받지못
해 허리 디스크까지 생겼습니다.
저희 가족은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울다가 울다가 지쳐서 이제는 가슴에 한이 맺혔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고 우리가족을 뛸듯이 기뻐했습니다.
이제는 오빠를 볼수 있겠구나...
하지만 아직도 아무런 연락이 없습니다.
청와대에서 사면에 힘쓰겠다고 하고... 경찰측은 구속에 힘쓰겠다고 하
니....
하지만 우리가족은 오빠가 5월이 넘지 않아 돌아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
습니다.
엄마는 오빠의 방을 새로이 도배를 하고, 새가구를 들여 놓았습니다.
시력이 나쁜 오빠를 위해 창을 하나 더 만들어 한층 밝은 분위기로 만들었
씁니다.
저는 뭐 크게 도운 일은 없지만 18살때부터 24살때까지 오빠와 떨어져 있었
기 때문에 어색함을 없애려고
이제서야 오빠가 있는 한총련이란것에대해 많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오빠와 대화를 할때 어색하지 않을테니까요.*^^*
이유야 어찌되었든...
오빠가 곧 돌아 온다고 하니 오랜만에 가족들은 활짝 웃고 살고 있습니다.
너무 섣부른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저희가족은 오빠와 한 식탁에서 밥을 먹을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
고 있습니다.
엄마 생신이 5월 2일인데 그날은 꼭 같이 있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4월 30일에 사면소식에는 꼭 오빠 이름이 있을 거구요!
그리고 오빠가 나오면 5년동안 미뤄놨던 가족사진을 꼬옥 다시 찍겠습니다.




위의 글은 제가 오빠의 수배가 풀리길 기원하면서 쓴 글입니다.
오빠는 4월30일 점심에 두명의 친구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