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 도시 군산에는 일제강점기의 상흔을 품은 적산가옥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이곳을 단순 관광지가 아닌, 새로운 문화 자원으로 바라보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데요.
그 현장에 최호림 국민기자가 다녀왔습니다.
최호림 국민기자가
(장소: 전북 군산시)
군산시 신흥동에 있는 적산가옥입니다.
일제강점기 세워진 주택으로, 히로쓰가옥으로 불리는데요.
지붕과 외벽 마감, 내부, 본식 정원 등이 건립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적산가옥을 보는 시각은 다양합니다.
수치스러운 아픈 역사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고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의 장으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습니다.
인터뷰> 류경선 / 경기도 고양시
"일본 말로 옛날에 야나기라고 했어요. 해방 때 태어났는데 일본 사람들이 망해서 쫓겨가는 것을 목격한 기억이 나요. 우리로서는 (적산가옥) 이게 그렇게 좋다고 볼 수 없죠.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점유해서 살았는데 보존 가치라는 것을 별로 느낀다기보다 수치스럽다고 봐요."
인터뷰> 강라희 / 대전시 관광객
"우리 또래들은 이것을 겪어보거나 보지도 못했고 역사책으로만 배우는 입장에서 한 번씩 보고 조금 더 느껴보면 좋지 않을까.."
인터뷰> 장윤섭 / 대전시 관광객
"역사를 잊은 자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이 정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동국사 / 전북 군산시)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동국사입니다.
1909년 금강선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돼 1913년 현재 위치로 이전한 동국사는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입니다.
인터뷰> 동국사 주지스님
"대나무도 종자가 일본 종자라고 해요. 자기들 자부심을 느끼고자 한 것 같아요. 현대까지 이르는.. 도중에 듣기로는 한 번 정도 이 건물을 부수자는 의견이 있었다는 것 같더라고요. 행정부에서.. 그런데 스님들이 반대했어요.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면 아픈 역사도 역사다.."
(동국사 대웅전)
등록문화유산 제64호인 대웅전은 일본에서 건축자재를 건물에 맞게 손질한 뒤 군산에 가져와 지은 것으로 에도시대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터뷰> 관광객
"역사를 보고 왔다기보다는 군산의 명소 정도로 생각해서 왔는데, 예상보다 더 깊이가 있는 것 같아요. 일제강점기 때 남아있는 흔적이라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묘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종교적인 것을 다 떠나서.."
1899년 개항 이후 군산은 일본의 쌀과 물자를 실어 나르는 수탈 항구로 자리 잡으면서 일본인 이주가 크게 늘었습니다.
당시 일본 상류층을 위한 주거지인 월명동과 신흥동 일대는 100여 년 전 도시 구조와 많은 적산가옥이 남아있는데요.
현장음>
"천장을 딱 뜯었더니 그 안에 상량판이 붙어 있었는데 거기에 '다이쇼 11년에 하야시 요비치가 지었다' 그래서 이게 1922년도에 지어진 건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대부분이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어서 용도 전환에 여러 제약이 있지만, 적산가옥을 이용한 다양한 문화적 시도를 펼치고 있습니다.
인터뷰> 송성진 / 관광숙박업 '공유인 유한회사' 대표
"탈근대의 시점,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목포나 대구 같은 곳도 선제적으로 이런 목조를 구입해서 어떤 것을 하려고, 보전과 보존을 하고자 하는 좋은 취지를 가진 사람들에게 피해 가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법 개정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이죠."
군산의 근대 유산을 식민의 상처를 기억해야 하는 공간이자, 새로운 문화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도시 문화로 발전시키려는 논의와 시도가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군산의 근대문화유산을 미래 세대의 창작 자원으로 연결하려는 시도가 '칼라(KAALA)문화재단'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근대의 극복과 수용' 이런 주제로 오랜 시간 작품 활동을 하고있는 황석영 작가는 자신의 작품 세계와 맞닿아 있는 군산을 배경으로 여러 나라와 함께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는데요.
수탈의 상징이었던 군산을 '탈식민'과 '평화'를 논하는 국제 예술 교류의 플랫폼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황석영 / 칼라문화재단 초대 이사장, 작가
"군산은 식민지 근대의 상징적인 항구거든요. 타자의 도시 아니에요. 호남평야의 쌀을 일본으로 수탈해 가기 위한 항구를 만든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식민지 제국주의적 인프라란 말이에요. 그런데 근대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느냐.. 그 극복하는 과정에서 어떤 점을 수용할 것인가 하는 게 늘 문제가 되는데 굉장히 중요한 주제거든요. 여기 와서 보니까 군산에서 칼라와 같은 문화 페스티벌, 축제를 하면 대단히 맞겠다.. 그리고 그 과정을 다 겪은 나라들이니까 그래서 서로 정서적으로 통할 수 있고 금방 이해할 수 있고.."
군산의 근대문화유산은 이제 지워야 할 과거라기보단 아픈 기억을 통해 미래를 모색하는 문화와 예술의 공간으로 다시 쓰이고 있습니다.
기억을 지키는 일과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일이 공존하는 도시, 군산의 변화는 문화가 어떻게 상처 입은 도시를 치유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국민리포트 최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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