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이문한] 왜 방폐장 유치를 건의하나
국민일보 1/12 기사발췌
원전 수거물 관리시설에는 원전 작업자가 사용하였던 작업복,휴지,덧신,장
갑 그리고 폐부품 등의 수거물을 보관한다. 방사성 동위원소는 생명공학 연
구에 유용하고 병원에서도 진단과 치료 목적으로 일상적으로 이용하고 있
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인 장갑,휴지,시험관,피펫,주사기 등도 이 시
설에 보관하고 있다. 동위원소를 사용하는 실험실과 병원 등에서 방사성 안
전 교육을 받은 연구원들이 별 두려움 없이 안전하게 사용하고 있다. 이들
수거물을 잘 취급하고 보관한다면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
원자로에서 발생하는 사용 후 연료(폐연료봉)는 고준위 방사성 물질을 함유
해 그 자체는 매우 위험하다. 이를 재처리하여 원전 연료로 재활용할 수도
있으나 경제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국제협약에 의하여 우리 나라에서는 재
처리할 수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TV에서 흔히 보는 북한 핵재처리시설처
럼 물 속에 중간 저장하였다가 동굴이나 특수시설에 영구 처분할 수밖에 없
다. 정부는 이 시설을 2016년까지 완공할 예정이다. 사용 후 연료도 다른 수
거물과 함께 원자력발전소에서 아직까지는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다.
고리 영광 울진 그리고 월성의 원전에서 보관하고 있는 중·저준위 수거물
은 원전에 따라서 2008년에서 2014이면 완전히 포화되고,사용 후 연료는 현
재보다 더 조밀하게 보관할 경우 2016년이면 포화된다. 원전 수거물 관리시
설을 건설하는 데는 건설 공정만 4∼5년이 족히 소요될 터이니 시간이 많
지 않다. 우리 나라는 세계 6위의 원전운영국이고 원자력에 의하여 국내 총
전력의 40%를 공급받고 있다. 우리 모두는 원자력의 수혜자다. 그리고 가
장 위험한 사람은 원전 종사자이고 그 다음이 주변 주민이다.
본인은 지난 30년간 식품위생 분야에 대하여 연구해왔다. 1970년대 중반 식
량 자급이 최우선일 때 식품안전성 분야는 그야말로 찬밥 신세였고,더러는
오죽 할 일이 없어 이런 연구를 하느냐고 비난받기도 하였다. 원자력 발전
을 부정하는 분이 어쩌면 30년 후에 본인과 똑같이 넋두리할 지도 모르겠
다. 악성 조류 독감이 만연하고,미국에서 소 한 마리가 광우병에 걸렸다고
보도되면서 너도나도 닭고기,오리고기,쇠고기 먹기를 꺼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여파로 육류시장의 유통은 왜곡되고,보이지 않는 무역전쟁이 시작
되고 있다. 작금의 원전 수거물 처리시설과 식품안전성과 관련한 사태를 접
하면서 소비자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이른바 선진국에서 정책 홍보와 소비자 교육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
유를 알 것 같다.
원자력은 평화적으로 이용한다 하더라도 커다란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것
이 사실이다. 식품 또한 식중독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정부는 그 유익성
과 위험성을 비교하여,위험성을 감당할 가치가 충분한지 아니면 한시적으
로라도 불가피한 선택인지에 대하여 명확히 하여야 할 것이다. 유익성과 위
험성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다룰 것이 아니라,시간적 공간적 그리고 사회
문화적인 개념도 포함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위험성이 있다고 모두 위
험한 것은 아니다. 이를 잘 관리하면 위해도를 낮출 수 있다.
서울대 교수들이 원전 수거물 관리시설을 관악 캠퍼스의 지하에 유치하자
고 제안한 이유는 현재의 과학기술이 원자력의 위해도를 충분히 낮출 수 있
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고,그 다음은 우리 대학 관련 전문가들이 위험한 일
이 발생하지 않도록 잘 관리해 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만약 원전 수거물
처리시설이 적기에 갖추어지지 않는다면 우리 대학 병원과 연구실에서 발
생하는 수거물을 처리하기 위하여 어차피 우리 대학 구내에 그 시설을 마련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국가와 사회로부터 혜택을 받
고 있는 수혜 집단의 하나로서,더 이상 국가의 큰 숙제이자 짐이 되고 있는
원전 수거물시설 유치 문제를 외면할 수가 없어 그 위험을 우리가 감내해
보자는 데 뜻을 같이 하였기 때문이다. 학내외 이해 당사자 여러분의 의견
을 널리 수용하지 못한 점,그리고 총장께 큰 짐을 지운 점에 대해서는 송구
스럽다고 말씀드린다.
환경단체가 원전 수거물시설 건설에 반대하는 이유는 좀더 안전하고 친환
경적인 에너지 정책으로 전환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건전한 비판과 합리적인 반대는 국가 발전의 또 다른 축으로 기능할 수 있
을 것이다.
이문한(서울대 수의대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