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림 앵커>
1960년대 우리나라 간호사를 독일에 취업시키는데 큰 힘이 된 파독 간호사의 대부가 있습니다.
바로 원로 독일 동포 '이수길 박사'인데요.
올해로 94이 된 이수길 박사가 '세 번째 회고록'을 냈습니다.
역사에 새겨진 남다른 인생 역정을, 김운경 글로벌 국민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김운경 국민기자>
1966년 독일 병원에 근무하던 이수길 박사는 당시 간호인력이 부족하던 독일의 사정을 한국 정부에 알려 우리 간호사의 파독을 추진합니다.
인터뷰> 이수길 / 독일동포원로, 의학박사
“(독일 병원 측에 따르면) 현재 독일에 3만 명의 간호사가 부족하다는 거예요. 오원선 보건사회부 장관을 만나서 한국 간호원들을 초청하고 싶다고 하니까 '이 박사 데리고 가시오. 우리 보건사회부하고 같이 간호사를 모집하시오...'"
1960년대 해외를 가는 것이 쉽지 않았던 시절.
이 박사는 제1차 파독 간호사 128명의 여권 수속까지 도맡아 해야 했습니다.
책 속에 보이는 빛바랜 자신의 여권을 보며 70대 파독 간호사는 감격해 합니다.
인터뷰> 박화자 / 제1차 파독 간호사
“그때 그렇게 어려운 환경이었거든요. 손수 (여권수속을) 쓰셔서 128명한테 주셨다는 게 정말 감사해요.”
일제강점기 함경도 북청에서 태어난 이수길.
그러나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고 난 후 장애인으로 힘겨운 삶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가정형편 상 의과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그는 의사 검정고시를 거쳐 의사의 꿈을 이루었으나 검정고시 의사 출신은 학위과정을 밟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독일 유학을 결심합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해외유학자격시험에 합격해 국비장학생으로 독일 생활을 시작합니다.
인터뷰> 이수길 / 원로 독일 동포, 의학박사
“한국에서 장애인으로서 너무 구박 많이 받았기 때문에... 두 번째는 이북에서 탈북한 사람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받은 구박을 다 책에 다 표현 (할 수 없었습니다)”
북한 간첩이라는 오해를 받아 중앙정보부에서 조사까지 받는 억울한 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낙담하지 않고 간호사 독일 취업을 비롯해 한국소아마비협회 창설, 한국심장병 어린이 무료수술 운동 등 조국의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1974년부터 1998년까지 24년간 소아과 개업의로 활동하면서 약 40만 명의 환자를 치료한 이 박사의 공적은 독일정부에서도 높이 평가했습니다.
대한민국국민훈장, 독일공로십자훈장, 독일사회공로훈장 등 양국에서 받은 서훈이 그의 헌신과 봉사의 삶을 잘 보여줍니다.
이수길 박사의 이런 봉사의 삶이 3번째 회고록 '개천에서 나온 용'에 담겼습니다.
현장음>
"만수무강하시면서 4번째 책도 꼭 써주시기 바랍니다"
"네"
코로나19 상황으로 출판 기념회에는 소수의 지인들만 참석했는데요.
60여 년을 해외동포로 살아온 94세의 이수길 박사의 자서전은 그 자체로 독일 한인 이민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인터뷰> 유제헌 / 유럽한인총연합회장
“박사님 자서전은 우리의 역사이기 때문에 길이 후손들에게 남겨질 수 있는 귀한 책이다...”
자서전은 평생 동안 장애인 남편을 내조한 아내 이영자 여사에게 헌정됐는데요.
이수길 박사는 이번 회고록 발간을 끝으로 할 일을 다했다며 이제는 아내와 함께 평안의 시간을 갖겠다고 합니다.
인터뷰> 이영자 / 이수길 박사의 아내
“당신은 당신 할 일만 해라. 당신 할 일만, 무슨 일이든지. 그 대신에 내가 집에 있으니까 집 걱정은 하지 말고 하는 일만 계속해서 좋은 일 많이 하세요. 항상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인터뷰> 이수길 / 원로 독일 동포, 의학박사
“내 아내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내가 있을 수 없죠.”
90여 년 한평생을 오직 선한 의지와 용기로 살아 낸 이수길 박사.
이 박사는 질곡의 세월을 견디며 조국 대한민국과 독일에서 희망의 꽃을 피우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독일 마인츠에서 국민리포트 김운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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