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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바다에 수장된 학살의 진실 - 창원 민간인 희생 사건

영상기록 진실 그리고 화해 시즌4

괭이바다에 수장된 학살의 진실 - 창원 민간인 희생 사건

회차 : 17회 방송일 : 2022.05.29 재생시간 : 29:36

노치수(76) / 보도연맹 희생자 故노상도의 아들
- 故노상도(40)는 일본 와세다 대학을 나온 지식인으로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해방 직후 부산과 마산지역에서 교사로 재직하면서 인민 해방, 농민 해방, 남녀평등 등을 외치며 좌익활동을 하다 포고령위반으로 연행돼 징역을 살고 49년 9월 출소 후 보도연맹에 가입이 되었으며 한국전쟁 발발 직후 소집 명령에 응했다가 형무소에 수감, 8월14일 사형을 언도 받고 LST(전차상륙함)에 실려 구산면 앞바다로 끌려가 총살, 수장됐다.
# 희생자의 아들 노치수에 따르면 1950년 7월 초, 마을 이장을 통해 보도연맹원들은 면사무소로 일을 하러 오라는 통보를 받고 아버지가 삽과 쌀소쿠리를 들고 집을 나섰고 그 후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송시섭(81) / 마산형무소 희생자 故송기현의 아들
-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구구수선 일을 하며 돈을 모은 故송기현(36)은 해방 후 고향에 돌아와 논을 사 형제들과 함께 크게 농사를 짓고 살았다. 동네 이장을 보던 그는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공비들을 도운 혐의로 연행돼 마산형무소에 복역 중 총살되었다.
# 희생자의 아들 송시섭은 어린시절 동네 뒷산에 공비들이 많았는데 그들이 밤에 총을 메고와 아버지를 불러내더니 쌀을 걷어 달라 요청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이장인 아버지는 동네를 돌며 한 말 정도의 쌀을 모아 공비들에게 줬는데 다음날 아침 10시 정도 경찰 두 명이 와서 아버지를 잡아갔다고 한다.

심진표(78) / 마산형무소 희생자, 독립운동가 故심재인의 아들
- 마산형무소 수감 중 괭이바다에 끌려가 총살 수장된 이들 중엔 독립운동가도 있다. 故심재인(33)은 1938년 일본으로 유학 가 1940년부터 재일 학생들을 규합해 항일 비밀결사를 조직해 활동하던 중 국내 조직원들의 문서가 발각되면서 체포돼 본국으로 소환되어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모진 고문 끝에 1944년 병보석으로로 나왔다.
# 심재인의 아들 심진표에 따르면 산송장으로 출소한 부친은 조금씩 회복되어 해방 후 농촌계몽운동을 했는데 1948년 사회주의자로 몰려 다시 연행, 마산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중 한국전쟁 발발 직후 괭이바다에서 총살 수장되었다.

정용문(74) / 보도연맹 희생자 故정성화의 아들
- 진전면 곡안리 주민 故정성화(27)는 보도연맹원 소집명령을 받고 진전면사무소로 갔다가 동네 주민 12명과 함께 마산 형무소에 수감되었고 괭이바다에서 총살, 수장되었다.
# 희생자의 아들 정용문은 당시 두 살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지만 할아버지를 통해 아버지가 희생된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할아버지에 따르면 해방 동네가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어느쪽 편을 들어야 가족이 다 무사할 수 있을지가 최대의 고민이었고 장고 끝에 국가에서 만든 보도연맹에 가입하는 것이 나을거라 판단하여 가입시켰다고 한다.

이령자(81) / 보도연맹 희생자 故이기승의 딸
- 마산에서 큰 목재공장을 운영하던 故이기승(30대 중반)은 공장으로 찾아온 CIC 군인들에 의해 연행 돼 마산형무소에 수감, 괭이바다에서 총살, 수장되었다.
# 희생자의 딸 이령자는 아버지가 cic에 의해 연행되던 날 현장에 있었으며 하얀 모시옷을 입고 있던 아버지를 군인들이 지프차에 태워 데려가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후 학생이던 이모가 와서 형무소를 지나다가 형무소로 들어가는 트럭 위에 잇는 아버지를 발견하고 인사를 나누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형무소에 수감된 것을 알았다.

안임호(81) / 보도연맹 희생자 故안민호, 안금호의 동생
- 당시 창원군 상남면 퇴촌리 청년들이던 故안민호(28), 안금호(18) 형제는 동네를 순찰하던 경찰들에 의해 트럭에 실려 운남면 신촌리 쇠뱅이마을 골짜기에서 총살되었다. 창원지역에는 괭이바다 외에도 10여 곳이 넘는 희생지가 있다.
# 희생자들의 동생 안임호씨에 따르면 당시 마을에는 골목마다 경찰이 순회를 했는데 형님들이 점심에 논에서 일을 하다 집에 와 밥을 먹을 때면 혹시라도 잡아갈 까봐 본인이 꼭 망을 봐줬다고 한다. 워낙 청년들이 많이 잡혀갔기 ?문에 그런 삶이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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