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에 참전해 한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헌신한 UN군의 숫자이다. 세계 최초이자 마지막이었던 UN군의 6.25전쟁 참전. 낯선 나라의 젊은이들은 낯선 나라의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 대한민국 정부에서도 이들의 헌신과 희생을 기억하기 위해 세계 유일 UN 참전군 묘지를 설치해 그들의 유해를 안장하는 것은 물론, 7월 29일을 유엔군 참전 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는 <UN군 참전의 날>
■ UN군, 그들은 왜 낯선 나라 한국을 도왔을까?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인해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유엔은 제2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유엔의 이름으로 연합군을 파병할 것을 결의했다. 이는 현재까지 유엔군의 이름으로 세계 분쟁지역에 파병한 유일한 사례. UN참전군 193만 명 중 179만 여명이 참전한 미국, 아프리카의 국가 중 유일하게 지상군 파병한 에티오피아, 남아메리카의 유일한 참전국 콜롬비아. 전투병력과 장비 등을 지원한 16개국과 의료지원 6개국 등을 포함하여 총 22개국, 연간 193만 여명의 젊은이들이 한국을 방어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넜다. 자국의 젊은이들이 피를 흘려야 하는 쉽지 않은 선택. 그들은 왜 동방의 작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것일까? 6.25 전쟁에서 UN군 참전용사들의 활약상을 되짚어 보고 그들이 낯선 나라 한국에서 지키고자 했던 자유와 신념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 할아버지가 목숨 걸고 지킨 대한민국을 찾은 후손들
7월 5일, 148명의 청년들이 부산역에 내렸다. 7월 1일 입국한 이들은 UN 참전용사들의 후손으로 미국, 영국 튀르키예 등 19개국에서 캠프에 참여하기 위해 일주일의 여정으로 한국을 방문한 청년들. 보훈처에서 마련한 UN참전용사 후손 교류 캠프는 2009년에 시작돼 올해 19년째, 6.25 전쟁으로 맺어진 인연을 미래세대로 계승하고 UN참전국과 자유를 향한 연대를 이어가게 하기 위한 행사이다. 참전용사의 후손들은 과연 자신의 할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UN군 묘지와 기념관에서 무엇을 보고 느낄까? 그들의 할아버지에게 들은 대한민국을 직접 방문해본 소회는 어떨까? UN 참전용사의 후손들을 만나 그들의 대한민국과의 특별한 인연을 재조명해보고 UN참전 용사들 뒤에 숨겨져 있던 개인의 이야기들을 만나본다.
■ 전쟁 고아의 아버지 리차드 위트컴 장군
1953년 부산역전 대화재 시 집을 잃고 추위와 배고픔에 떨던 3만 명의 이재민에게 군수 창고를 개방해 먹을 것과 잠을 잘 텐트를 제공. 군법회의에 회부되는 등 고초를 겪고도 한국으로 돌아와 전후 복구와 재건에 기여했던 리차드 위트컴 장군. '한미재단'을 설립해 미국에서 한국을 돕는 공공과 민간의 지원이 끊임없이 이루어지도록 해 전쟁고아의 아버지로 피난민의 아버지로 불리며 부산 시민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있다. 그의 업적을 재조명하여 UN참전용사들의 국적을 뛰어넘은 인류애와 동맹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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