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석 앵커>
6.25 전쟁 당시 광주의 유일한 격전지인 '산동교', 혹시 알고 계시나요?
북한군에 맞서 우리 군경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인데요.
6.25 전쟁 70주년을 맞아 이곳을 찾은 참전용사들은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임보현 국민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임보현 국민기자>
6·25 전쟁이 난 뒤 한 달 가까이 지난 1950년 7월 23일, 호남지역으로 밀고 내려온 북한군이 급기야 광주까지 들이닥쳤고 영산강을 가로지르는 산동교에서 아군과 전투를 벌였습니다.
제가 서 있는 이곳이 광주의 유일한 6·25 전쟁 격전지인 산동교인데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이곳 다리 곳곳에는 지금도 총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교각을 살펴보면 빗발쳤던 총탄 자국을 어렴풋이나마 볼 수 있는데요.
탱크 3대를 앞세운 북한군에 맞서 소총으로 무장한 우리 군과 경찰이 5시간 동안 싸웠던 산동교 전투, 30여 명이 전사하고 50여 명이 부상당하는 사이에 시민들이 몸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6·25 전쟁 70주년을 앞두고 이곳을 찾은 참전용사들.
현장음>
"저것이 총탄 자국같이 보입니다. 다리 옆에..."
인터뷰> 유정상 / 6·25 전쟁 참전용사
"소총 가지고 탱크를 상대로 총을 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이고 도저히 상상할 수 없고 불가능한 전쟁이었어..."
호남에서 낙동강으로 가는 길목이던 산동교, 1930년대에 세워진 길이 228m의 작은 다리인데요.
전쟁 당시의 다리 모습이 담긴 사진과 함께 산동교 전투를 설명한 안내판이 설치돼 있습니다.
백발이 된 세 분의 노병들, 전사한 호국영웅들을 추모하며 머리를 숙입니다.
현장음>
"일동 묵념!"
다리 곳곳을 거닐어보는 참전용사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악몽 같은 전쟁의 기억은 너무도 또렷하기만 합니다.
현장음>
"(포탄 날아오는) 소리가 '휭'하면 넘어갔다. '훅'하면 그 앞에 떨어졌다..."
전쟁터의 처절한 현장을 생생하게 증언하듯 하나하나 떠올리는 노병들.
현장음>
"부상자들도 우리가 전부 다 업어 내려오고 후송시켜서 살려 놓고..."
현장음>
"(전쟁터에) 갈 때는 웃으면서 가는데 (돌아올 때는) 전부 시체로 와. 그런 참혹한 전쟁사가 지금도 마음에 아련히 새겨져 있다고..."
감회에 젖은 노병들, 청춘을 바쳐 나라를 지켰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듯 힘차게 거수경례를 해봅니다.
현장음>
"경례! 충성!"
(보훈회관 / 광주시 광산구)
6·25 참전용사들은 전쟁을 함께 겪었던 전우들을 만나보기도 했는데요.
전쟁 당시 사진도 보고 호국영웅에게 수여 되는 훈장도 보면서 지난날을 회상해봅니다.
인터뷰> 이석춘 / 6·25 전쟁 참전용사
"전쟁이라는 것은 참으로 비참한 것입니다. 젊은 여러분들은 선열들의 희생정신을 되새겨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잘 이어나가길 바랍니다."
전쟁의 아픔을 간직한 산동교는 현충 시설로 지정돼 역사의 산 교육장이 됐습니다.
인터뷰> 하유성 / 광주지방보훈청장
"많은 시민이 옛 산동교에 서린 역사를 모르십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가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산동교는 현재 사람과 자전거만 오갈 수 있는데요.
온몸으로 나라를 지켰던 참전용사들의 소망은 단 하나뿐입니다.
인터뷰> 오달면 / 6·25 전쟁 참전용사
"다시는 이 나라에 전쟁이 없길 진심으로 바라고 또 바랍니다."
국민리포트 임보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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