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단 김종훈 수석대표는 “본협상을 앞두고 한미 양국이 과거 다른 나라와의 FTA 체결 때보다 공세적이거나, 혹은 보수적인 요구조건을 내걸고 있다”며 “하지만 이는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므로 시작도 하기 전에 난항이나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볼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오는 5일 한미 FTA 1차 협상을 앞두고 있는 김 대표는 2일 브리핑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양국 간 입장 차를 얼마나 절충하느냐가 1차 협상의 과제”라고 설명했다.
우리 측은 협정문 초안을 통해 △농산물 특별 세이프가드 도입 △섬유 분야 원산지 규정과 관세 철폐 △개성공단 생산제품에 대한 특혜 관세 부여 △물품취급수수료 및 항만유지수수료 면제 △실적 요건 등 정부조달 입찰 참여조건 완화 등을 요청했다.
미국 측은 △배기량을 기준으로 한 자동차 세제 개편 △택배와 법률자문에 대한 개방 또는 경쟁조건 개선 △섬유 분야에 대한 엄격한 원산지 규정 적용과 특별 세이프가드(수입제한조치) 도입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 등 협상내용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1차 협상에서 자동차 세제 개편은 거부할 것이며, 택배와 법률자문 개방 수준에 대한 논의는 2차 협상으로 미룰 것이라고 밝혔다.
양국은 협정문 초안 내용 중 유사하거나 절충 가능한 내용은 단일문안으로 정리하고, 입장 차이가 명백한 내용은 양측 입장을 함께 명기한 ‘통합협정문’을 작성해 차기 협상의 기초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구체적인 상품 양허나 서비스ㆍ투자 유보에 대한 논의는 당초 예정한 대로 7월 10일부터 14일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2차 협상에서 다루게 된다.
이번 1차 협상에 나서는 우리 측 인원은 외교통상부의 통상교섭본부 인력 80명이 총동원하고 정부 내 23개 관련부처의 통상인력을 합쳐 모두 162명이고, 미국 측은 178명에 이른다. 미국 측 인원이 다소 많은 데 대해 김 대표는 “인적 자원 동원이 유리한 홈그라운드의 잇점을 미국이 활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이어 “우리 측 대표단은 변호사 자격증 소지자를 비롯한 최고 전문가와 많은 경험을 가진 공무원, 국책연구기관 연구진 등이 포진한 그야말로 ‘통상의 드림팀’”이라고 소개했다.
정부는 1차 협상을 마친 후 오는 27일 정부 합동 제2차 공청회를 열어 관련 업계와 단체, 협회 등의 의견을 들어 향후 협상에 반영할 계획이다.
다음은 협정문 초안에서 나타난 각 분야별 한미 양국 입장이다.
◆ 상품무역 분야
상품무역에 대해 양국은 내국민 대우 원칙을 갖고 있으나, 미국 측은 원목에 대한 수출 통제와 연안 해운 자국산 선박 사용 등에 대해서도 예외 인정을 요청했다. 반면 우리 측은 미국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업계의 의견을 반영해 물품취급수수료와 항만유지수수료의 면제를 주장했다.
특히 섬유 분야의 경우 우리 측은 각별한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보고 완화된 원산지 규정을 제시하고 관세 철폐를 요청했다. 하지만 미국 측은 엄격한 원산지 규정에 더해 특별 세이프가드 도입을 내세우고 있어 협상에서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또 미국 측은 주로 대형이 많은 특성 상 배기량 기준 세제 개편을 요구하고 있으나 우리 정부는 자동차세가 지자체의 주된 세원이라는 점을 고려해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약가에 대해서도 미국 측은 시장접근을 위한 많은 요청을 할 것으로 보이나 문서로는 명시하지 않고 있어, 협상이 시작돼야 구체적 요구 조건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개성공단 생산제품의 특혜관세 적용에 대해서는 한ㆍ싱가폴, 한ㆍ유럽자유무역연합(EFTA), 한ㆍ아세안 FTA에서도 이미 인정된 사항임을 들어 미국 측을 설득한다는 게 우리 정부의 전략이다.
가장 민감한 분야인 농업의 경우, 우리 측은 농산물 특별 세이프가드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으며, 미국 측은 최소수입물량(TRQ) 운영의 상세한 절차를 규정하자고 제안한 상태다.
◆ 서비스ㆍ투자 분야
우리 정부는 과거 외환위기를 겪은 경험을 고려해 국제수지 위기 상황에서는 국경 간 자본거래 및 송금을 제한하는 일시적 긴급제한조치 허용을 제안했다.
또 기업인의 이동을 원활히 하고 전문직 종사자의 대미 진출을 위해 별도의 전문직 비자 쿼터 설정도 요청했으나, 이는 미국 행정부가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는 사안이라 미 의회에 우호 세력을 확보하는 노력이 병행돼야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측은 택배와 외국법률자문의 두 가지 특정 서비스에 대한 개방과 경쟁조건 개선을 협정문 초안에 명시했다. 이는 미국 내 관련 협회의 로비가 그만큼 강하지 않았느냐는 분석을 낳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다른 서비스 분야와 같이 2차 협상에서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특정 서비스만 따로 떼서 논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금융서비스와 관련해 미국 측은 내국민 대우 원칙 하에 국내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의 신금융서비스 공급 허용을 요청했으며, 우리 정부는 국경 간 거래에 대한 소비자 보호조항을 명시하자고 주장했다.
미국 측은 통신 분야에서 정부의 과도한 역할이 민간 자율 경쟁을 해친다는 입장을 피력한 반면, 우리 측은 정당한 정책 목적 달성을 위한 정부 역할은 필요하다는 입장을 펼 예정이다.
◆ 기타 분야(정부조달, 경쟁, 지재권, 노동ㆍ환경)
우리 측은 연간 3300억 달러에 이는 거대한 미국 정부조달 시장에 관심을 갖고, 과거 조달ㆍ납품 실적을 요구하는 입찰참여 조건의 완화를 요청하고 있다.
미국 측은 경쟁과 관련, 독점기업이나 공기업이 정부 권한을 위임받아 행사하는 경우에 정부와 같이 FTA 협정을 준수하고 상품이나 서비스 거래 시 차별적 대우를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 미국 측은 저작권 보호기간을 사후 50년에서 70년으로 연장할 것을 요청했다. 이는 국내 작가협회와 출판업계의 견해가 엇갈리는 부분이어서 일단 1차 협상에서는 기존 제도를 유지한다는 게 우리 측의 입장이다.
아울러 미국 측은 자국의 노동ㆍ환경법 집행에 실패한 경우 분쟁 해결절차 회부 및 의무위반 판정 시 벌과금을 부과하는 규정을 제시했다. 벌과금은 피소국의 노동ㆍ환경 개선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