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의 미망에서 벗어나
이념의 시대를 넘어 비전과 정책의 시대로
1. 중도란 무엇인가?
중도는 좌와 우 혹은 진보와 보수의 중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물론 단순한 절충주의는 더더욱 아니
다. 그러면 중도란 무엇인가? 중도는 첫째, 좌와 우, 진보와 보수를 모두 아울러야 한다. 모두 포용하
여야 한다. 환언하면 그들의 주장을 진지하고 정확하게 이해하고 각각의 주장의 ‘상대적 가치’를 공
정하고 공평하게 포용하여야 한다. 둘째, 국민의 이념분열과 사회의 이념갈등을 극복하여 사회와 국민
을 하나로 통합하고 단결시켜야 한다. 그리하여 셋째, 우리 국민과 국가를 질적으로 한 차원 발전되
고 진화된 단계(높은 문화와 문명의 단계)로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 이러한 입장을 우리는 중
도라고 생각한다. 중도(中道)는 대도(大道)이고 천하의 공도(公道)이다.
그러면 과연 좌와 우, 진보와 보수를 함께 아우를 수 있는가? 포용할 수 있는가? 포용한다는 것은 과
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선 그것은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상대적 가치를 인정한다는 이야기이다.
좌와 우 그리고 진보와 보수가 자신들을 절대화하려 한다면 그것은 잘못임을 그들에게 지적하여야 한
다. 그러나 그들의 상대적 가치는 존중하고 그들의 주장을 경청하여야 한다. 그러나 진정한 중도가 되
려면 그들의 상대적 가치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만으로 불충분하다. 반드시 한 단계 높은 방향으로
이들을 설득하고 계몽하여 나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좌와 우, 진보와 보수는 자꾸 자신들의 생각과 주
장을 절대화하려는 내적 외적 유혹을 받기 때문이다. 각자가 자신들을 절대화하지 않을 때 진정 자신
들의 가치와 의미가 살아나고 들어 남을 이들에게 알려야 한다. 좌는 우에서 배우고 우는 좌에서 배
울 때 진정 훌륭한 좌가 되고 훌륭한 우가 될 수 있음을 알려 주어야 한다. 진보는 보수에게서 배우
고 보수는 진보에게서 배울 때 진정으로 합리적 진보와 합리적 보수가 될 수 있음을 알려 주어야 한
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좌나 우 혹은 진보나 보수는 모두 우리 인간의 사고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우리
의 삶의 참 모습 그대로가 아니다. 환언하면 ‘실재의 논리’가 아니고 ‘사고의 논리’이기 때문이
다. 사고는 실재가 아니다. 우리의 생생한 삶의 모습 속에는 좌와 우가 진보와 보수가 서로 ‘원융
(圓融)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처음에는 우리는 생생한 삶의 모습에 대한 이해의 편의를 위하
여, 분석의 편의를 위하여 좌와 우 라는 두 개념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그 이후 이 두 개념을 실재
(reality)라고 혼동하고 두 개념의 노예가 되어 서로 각자를 절대화하려 하고 있다. 그리하여 불필요
한 투쟁과 분열과 그리고 갈등이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개인적 자유의 절대화든 사회적 평등의 절
대화든 모두가 삶의 살아 있는 모습에 反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개인주의의 절대화든 공
동체주의의 절대화는 모두가 反생명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래가 독자적이
면서도 관계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래가 자유이면서 공생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2. 21세기는 中道의 세기
앞으로 오는 21세기는 우리는 중도의 세기라고 생각한다.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2-1. 좌 우 모두 수입사상
첫째, 본래가 좌파든 우파든 진보든 보수든 모두가 서구에서 수입된 사상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들 입
장이 우리나라의 현실 속에서는 서구와는 상당히 다른 왜곡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예컨대 서구적 보
수는 전통과 가치를 중시하고 서구적 진보는 사회적 약자의 편을 드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우리의 역
사에는 불행히도 단절과 불연속이 많아서인지 보수가 지켜야 할 오랜 기간 지속되어 온 전통과 가치
를 많이 가지고 있지 못하다. 아니 설사 있다고 하여도 보수가 그러한 전통과 가치를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여 왔다. 따라서 우리나라에는 기득권을 지키는 ‘정치적 보수’는 있으나 전통적 가치
와 원칙을 지키는 ‘철학적 보수’는 자라지 못하였다. 반면에 많은 역사적 단절 속에서 그리고 냉전
의 틈바구니에서 우리나라의 진보는 자신들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정책화해 볼 역사적 경험을 가지지
못하였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감상적 진보’는 있으나 그들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구체적 정책을 제시하거나 추진능력을 갖춘 ‘정책적 진보’는 없게 되었다. 한마디로 좌
든 우든 진보든 보수든 아직은 우리의 정치적 경제적 삶 속에 올바로 착근되어 있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이들 사상은 서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