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요일, 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음악이 흐르는 세상>시간입니다.
해마다 환절기가 되면 찾아오는 감기처럼, 반갑지 않은 손님이 있습니다.
가요계에는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표절논란이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요.
오늘의 주제, 화면으로 함께 보시죠.
오늘은 ‘가요계 표절논란’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는 시간 마련했습니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나와 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달갑지 않은 일입니다만, 처음도 아닌 표절논란이, 다시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Q1> 가요계의 표절 논란이 최근에는 더욱 빈번해진 느낌인데요.
그
이유가 뭘까요?
A1> 끊이지 않는 가요계 표절논란
'하트브레이커'는 미국 힙합 가수 플로 라이다의 '라이트 라운드', '버터플라이'는 영국 록 밴드 오아시스의 '쉬즈 일렉트릭(She's Electric)'과 흡사하다는 의견. 여성그룹 쥬얼리의 신곡 '스트롱 걸'은 미국 팝 스타 레이디 가가의 히트곡 '포커페이스(Poker Face)', FT아일랜드의 '빙빙빙'도 영국 밴드 맥플라이의 '파이브 컬러스 인 허 헤어 맥플라이(Five Colours In Her Hair Mcfly)'와 흡사하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이대 나온 여자’가 부른 ‘2009 대학가요제’ 대상곡 ‘군계무학’은 힙합듀오 리쌍의 ‘광대’와 MBC 드라마 ‘소울메이트’의 삽입곡 누벨 바그의 ‘This is not a love song’과 흡사하다며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음반을 통째로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좋아하는 노래를 한 곡씩 '다운'받는 식으로 음악시장이 변하면서 히트곡의 유통 기한은 점점 짧아졌다. 인터넷에 음원을 내놓고 2~3일 내 반응이 오지 않으면 '휴지통'행이다. 제작자들은 후크송(단숨에 귀에 꽂히는 노래)을 만드는 데 혈안이 되고, 결국 해외의 성공 사례를 적극 '참조'하게 된다. 한 가요기획사 간부는 "많은 제작자들이 작곡가에게 곡을 의뢰할 때 외국 팝 가수의 노래를 주면서 '이런 템포와 분위기로 만들어달라'고 한다"며 "해당 가수가 아예 그 노래를 부르게 만들어 데모 테이프를 주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팝 음악 저작권 대행업체 워너 채플 뮤직 코리아 관계자는 "이미 해외 차트에서 성공한 팝을 따라 하니까 표절 논란이 더 커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Q2> 말씀하셨듯이 많은 곡들이 표절 논란에 오르내리면서도, 어떤 제재나 명확한 해명이 이루어 지지 않으면서 표절문제가 만성이 되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는데요.
A2> 과거와 달리 표절 시비가 음반 판매나 활동에 큰 지장을 주지 않아 / 표절 논란을 노이즈 마케팅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도 한다.
최고 인기그룹 빅뱅의 멤버 지드래곤이 발표한 곡 ‘하트브레이커’가 외국 힙합 곡을 표절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다시 한 번 표절이 음악 팬들의 입방아와 언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지드래곤의 노래는 표절 시비를 비웃듯 다운로딩 및 방송 순위 차트에서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과연 지드래곤이 표절을 했느냐 안 했느냐 여부가 세인들의 관심사일 테지만, 더 중요한 것은 왜 우리 음악계에 표절 시비가 끊이질 않는가 하는 점이다. 도대체 국내 음악계가 어떻기에 악령이 부활하듯 정기적으로 표절 문제가 불거지는 건가.
표절 시비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대중가요가 산업으로 몸집을 불리기 시작한 1980년대부터 줄기차게 이어져왔다. 1990년대에는 절정에 달해 꽤 많은 당대 유명 작곡가와 가수가 표절 시비에 휘말리곤 했다. 그 무렵 대중가요 산업의 매출 규모가 4000억 원을 넘어서며 당당히 세계 10위권 대열에 들어서는 ‘빛’과 동시에, 히트곡의 표절 시비라는 ‘그림자’가 뒤따르곤 했던 것이다.
표절논란에도 불구하고 인기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는 것이 최근의 특징이기도 한데요.
Q3> 예전에는 가수에게 표절시비가 굉장히 치명적이지 않았습니까?
A3] 표절 논란, 90년대엔 은퇴·자살소동까지 이어져 / 대표적인 예로 ‘룰라’
90년대까지만 해도 표절은 가수들에게 치명적 상처를 남겼다. 그룹 룰라는 95년 3집 타이틀곡 '천상유애'가 일본 노래 '오마쓰리 닌자'를 표절했다는 논란 속에 해체 위기를 겪었으며 리더 이상민은 자살 소동을 벌이기도했다. 96년에는 김민종이 자신의 히트곡 '귀천도애'가 일본 노래 '섬머 드림'을 표절했다는 점을 인정하며 가수 은퇴를 선언했다.
표절논란이 있을 때마다, 꼭 들리는 얘기가 있습니다.
Q4> 표절이 아니라 모티브만 따온 것뿐이라거나, 아니면 콘셉트를 차용했다는 말인데요.
‘어느 정도가 표절이냐’ 하는 기준 자체가 명확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A4> 먼저 혼란을 주고 있는 레퍼런스, 샘플링의 정의 / “편곡이 비슷한 것도 표절이다.” “트렌드의 수용일 뿐이다.” 표절의 기준이 모호한 것이 문제 / 대표적인 예로 ‘이효리’
이효리의 2집 ‘다크 앤젤’(Dark Angel)의 타이틀 곡 ‘Get ya’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Do something’와 유사성 논란.
결론부터 말하면 이 곡은 법적으로는 표절이 아니다. 공연윤리위원회가 공연예술진흥협회로 바뀐 뒤 ‘2소절(8마디) 이상 음악적인 패턴이 동일하면 표절’이라는 기준이 없어졌고, 표절 여부는 원작자의 고소를 통해 법정에서 가려진다.
‘Get ya’ 등을 둘러싼 표절 시비는 특정 부분의 멜로디가 똑같다기보다는 편곡과 멜로디, 사운드 구성의 유사성에 초점에 맞춰진다. 베끼기의 대상으로 거론되는 곡들과 음정이나 리듬은 조금 다르지만, 원곡이 없으면 결코 나올 수 없는 곡이라는 지적이다.
물론 이는 표절이 아니라 해외 팝 트렌드의 수용일 뿐이라는 반론도 있다. 전 세계가 미국 팝 음악의 영향권에 있고 국내 팬들도 R&B와 힙합 등에 익숙해진 상황에서, 해외 팝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효리도 컴백 기자회견에서 “나는 대중가수다. 어떤 음악이 대세라면 표절 시비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그 음악을 할 것이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음악계에서 일반화한 ‘샘플링’(Sampling)이 표절 논란을 부르기도 한다. 샘플링은 특정 음원의 멜로디나 리듬을 따와 곡을 만드는 것으로, 표절과는 다르다. 그러나 저작권이 있을 경우 원곡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이런 표절논란이 진실이든, 아니든 간에 가수와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을 텐데요.
Q5> 표절논란에 대한 대응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A5> 논란이 계속될 경우 해당곡의 원작자와 합의를 이끌어 내기도 해 / 대표적인 예로 ‘이승철’
사실 표절의 기준은 모두 알고 있다. 표절시비가 일어난 곡의 저작권자가 표절이라 인정하고, 법의 판결을 받으면 된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표절을 가리기 위한 소송 자체의 시간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영-미-일의 저작자들, 특히 유명 저작자들은 상대적으로 시장이 작은 한국의 수익 때문에 복잡한 소송을 걸려 하지 않는다. 대신 이승철은 ‘소리쳐’의 표절시비가 일어난 뒤에야 원곡의 저작권자에게 저작권을 일부 넘겨주고 “표절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게 따지면, 한국에서 표절인 곡은 없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매체, 그리고 대중의 음악적 판단의 역할이 보다 중요해진다. 한국에서 표절 뮤지션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징계는 언론과 대중이 개입해 표절 뮤지션이 원저작자에게 관련 수익을 넘기도록 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표절 문제는 물론 근절되어야 할 일이지만, Q6> 일부 네티즌의 무분별한 표절 시비는 의미 없는 논란만을 촉발시킬 뿐이리라는 우려도 있는데요.
A6> 무분별한 표절 시비, 창작자 가슴 멍든다.
트렌디한 거의 모든 신곡들은 해외 곡들과 엮이다시피 해서 가수가 진땀을 빼야하는 케이스가 많았다. 누구나 식별할 수 있는 수준의 멜로디 표절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느낌이 비슷하다고 공격하는 게 대부분의 사례다.
실제로 작곡가가 대상곡을 참고했는지 여부는 쉽게 판별해내기 어려운 대목이다. 깐깐하고도 가혹한 시비를 통해 진짜 '비양심'적인 작곡가를 추려낼 수는 있겠지만, 이를 위해 양심적인 창작자들의 의욕까지 꺾으니 문제가 되고 있다.
실제 창작자 및 가요관계자들은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표절 시비로 때아닌 곤욕을 치른 바있는 가요관계자 A씨는 "처음 온라인 상에서 표절 여부를 묻는 게시글을 보고 황당해서 무시했었다. 그런데 '비슷하게 들리지 않나요?'라는 글이 표절 시비로 번지더니, 어느새 표절로 기정사실화 돼버렸다"며 표절 시비 논란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망이 갖춰진 나라인 만큼 전 세계 음악에 대한 접근도가 높은 상황에서 더 이상 표절은 힘들어졌다. 누리꾼들은 국내가수가 신곡을 발표하면 해외 음악과 비슷한가를 체크하고 무대나 뮤직비디오, 심지어는 음반 재킷이나 의상까지도 시비삼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일부 가수나 음반 제작자에게는 표절 논란이 억울한 측면도 있다. 몇 소절만 비슷할 뿐인데 전체가 표절이라는 시비에 휘말리기 쉽기 때문이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전 세계의 음악을 모두 들어보고 우리가 제작한 곡이 비슷한지 미리 점검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국내 누리꾼들은 그러한 부분까지 지적하면서 표절이라고 하는데 억울할 때가 있다”고 설명했다.
논란은 시시비비가 명확히 가려지지 않으면 계속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Q7> 현재 우리나라에서 표절에 대한 심의와 대응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A7> 가요 표절 심의기구가 없다 / 원작자가 소송 제기해야 시비 가린다.
지난 97년 10월까지는 공연윤리위원회에서 표절 심의를 담당했다. 5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가 '2소절(8마디) 이상 동일한 패턴을 나타내거나 음정이 다르더라도 박자 분할이 같은 경우'를 표절로 간주했다. 당시 논란이 된 많은 곡들이 이 심의를 통해 표절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공연윤리위원회 폐지 이후 99년 설립된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는 표절 심의기구가 없어졌다. 현재 표절에 대한 판정은 오로지 법원을 통해서만 이뤄진다. 원저작권자가 표절로 인해 자신의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고소를 해야 재판을 통해 결과가 나온다. 하지만 외국곡을 표절했을 경우, 해외 원저작권자가 실제로 해당 작곡가나 업체에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우리나라 법 체계가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고 있지 않아 힘들게 소송을 해봐야 실익이 없다는 판단을 하기 때문. 표절을 한 작곡가와 업체 입장에서도 재판에서 지더라도 원저작권료와 비슷한 액수만 배상하면 되므로 금전적으로 별다른 타격이 없다. 법무법인 두우 최정환 변호사는 "우리나라에서 진행된 표절 관련 소송에서 원저작권자가 승리한 경우는 10% 안팎에 불과하다"며 "음악에서 표절을 증명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양심을 저버린 일부 비뚤어진 작곡가와 그들을 지원하는 제작자들은 표절 행위가 저작권 소유자의 이의제기가 없으면 성립할 수 없는 친고죄라는 점을 악용하기도 한다. 내가 살짝 외국 곡을 베꼈더라도 그 먼 나라의 저작자가 어떻게 한국에서 유행하는 곡까지 일일이 챙기고 저작권을 따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많이 자리 잡혔다고는 하지만 타국에서 저작자의 권리 행사는 여전히 원활하지는 않다.
최근에는 정부차원에서 제도적으로, 표절문제를 대처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는데요.
Q8> 근본적으로 표절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개선되어야 한다고 보시나요?
A8> 우리 대중문화의 영원한 질병인 ‘너도나도 우르르’ 풍토 개선 / 표절은 엄연한 도둑질이라는 사고의 정착필요.
안타깝게도 표절을 근절할 수 있는 방법은 작곡가의 양심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 네티즌의 날선 감시 말고는 마땅한 사회적 제재수단이 존재하지 않는 까닭이다. 표절은 엄연한 도둑질이라는 사고가 정착되지 않는 한, 가요계의 현실을 전제할 때 사라지기 어렵다. 작곡자와 제작자들은 물론 미디어 그리고 소비자를 포함한 관련 집단 전체가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어느 누구 하나가 정신 차린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무조건 좋은 음악만이 살아남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작곡가들이 고통과 혼으로 쓴 곡들이 히트하고 합당한 대우를 받는다면, 지금처럼 일부 작곡가들이 오로지 감각만을 동원하고 급기야 표절 유혹에 빠지는 일은 발을 붙이지 못할 것이다. 애써 만든 창작곡에 대한 관심과 애정, 뻔한 얘기지만 이것만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이다. 이게 안 되면 표절은 언제든 우리 음악계를 괴롭히는 영원한 바이러스로 건재할 것이다.
‘음악이 흐르는 세상’ 오늘은 ‘가요계 표절 논란’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말씀 나눠주신 임진모 대중문화평론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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