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요일, 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음악이 흐르는 세상>시간입니다.
모차르트나 베토벤 같은 음악가도 당시에는 최고의 인기를 누린 대중 음악가였습니다.
한때의 인기를 넘어, 음악의 역사로 남는 음악가들이 있습니다.
우리 대중음악계에도 예외가 아닌데요.
오늘의 주제, 화면 함께 보시죠.
네, 오늘은 우리 대중음악의 새 역사를 쓰는 뮤지션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는 시간 마련했습니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나와 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우리가 비틀즈나 마이클 잭슨을 이야기하면서 ‘신화’다! ‘전설’이다! 이야기하는데요.
정작 우리 대중음악의 신화와 전설에는 너무 무관심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Q1> 오늘은 우리 음악계의 전설적인 가수들을 소개해 주신다고요?
A1> 한국에도 新레전드가 있다. 모든 기록이 한국 대중음악의 기록이고 모든 행보가 한국 대중음악의 새로운 역사가 될 뮤지션들- 조용필, 김현식, 신승훈.
첫 번째로 만나볼 조용필씨는 Q2> 정말 이 분은 대한민국의 ‘대표가수’라고 해도 아니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 같아요.
A2>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우뚝 섰지만 곧 이은 대마초파동으로 무대에서 사라져야 했던 조용필은 1970년대를 보내고 막 새로운 10년을 맞이한 1980년, 이전과는 내용물이 사뭇 다른 본격적인 독집 앨범을 가지고 화려하게 컴백한다. 달라진 그 내용물은 '돌아와요 부산항에'처럼 시대의 불가피했던 산물로서 록(고고) 리듬에 트로트 선율을 결합한, 이른바 트로트고고가 아니었다. 거의 4반세기가 흐른 지금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절창(絶唱)으로 꼽히는 '창밖의 여자' 그리고 당시로는 신기했던 드럼 머신 사운드에 가성을 얹은 '단발머리'는 확실히 새로운 콘텐츠였다. 앨범에는 '대전불루스'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그리고 다시 부른 '돌아와요 부산항에' '정' 등 이전 트로트고고 계열의 노래가 많이 포진되어 있었지만, 이 두 노래 덕분에 조용필은 뉴 이미지로 새 시대를 공략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단발머리'는 당시 서구 록 밴드의 경향인 뉴 웨이브를 수용해 그가 트렌드의 기민한 해석자라는 것을 알려주었으며, 그만큼 한발 앞서가는 유행의 선두 뮤지션으로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90년대의 인기그룹 015B가 이 곡을 리메이크하고자 했던 것은 추억의 재생뿐 아니라 부분적으로는 그 진보적 접근에 대한 경의였을 것이다. 곡의 스타일이 달라지면 조금 주춤거리는 것이 대중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매력적인 음색을 잊지 않았던 팬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폭발적인 갈채로 그의 재림을 환영했다. '창밖의 여자'와 '단발머리'는 90년대의 기린아 서태지와 아이들의 선풍에 결코 못지않은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다. 조용필은 단숨에 최고가수 자리에 등극했으며 이후 10년 이상 아무런 경쟁상대가 없는 완벽한 1인 독주와 지배 체제를 구축했다. 그 무렵 연예계 소식은 온통 그에 대한 얘기로 뒤덮였을 정도로 조용필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1집 <창밖의 여자>는 조용필 최고의 앨범은 아니더라도 이 음반이 없었으면 '고추잠자리'의 3집, '자존심'의 4집, '친구여'의 5집도 없다. 게다가 이 앨범은 잊을 수 없는 아픈 시대성이 동행한다. 만약 명반 책에는 빠질지 몰라도 음악역사서에는 반드시 기록될 앨범이다.
당시 조용필씨의 인기가 지금의 아이돌들을 능가했다는 걸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 텐데요.
아마 요즘 젊은 세대도 음악을 들어보면 왜 그렇게 인기가 있었는지, 충분히 공감하실 겁니다.
준비한 음악 함께 들어보시죠.
가왕(歌王), 영원한 오빠 조용필씨가 올해로 환갑을 맞으시는데요.
아직도 왕성한 음악활동을 하고 계셔서 음악팬의 한 사람으로 정말 감사합니다.
Q3> 그런데 이제 만나볼 ‘이 분’은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분이어서 너무나 아쉽습니다.
고 김현식씨입니다.
A3> 가수들이 가장 존경하는 가수, 고 김현식에게 바치는 찬사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에게 바치는 최고의 찬사라기보다는 최소의 찬사다. 이러한 찬사도 과장만은 아니다. 가요사에서 가장 노래를 잘 부른 가수와 가장 멋있는 가수가 한 명이었다면, 그는 김현식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타고난 목소리에 뛰어난 작곡 재능, “제임스 딘”(‘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 같은 외모, 뒷골목의 “나쁜 경험”(김현식)도 있는 “가요계 최고의 왕펀치”(‘봄여름가을겨울’ 전태관) 그리고 32살 나이에 숨진 요절의 신화까지. 1990년 11월1일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김현식 이전에 김현식이 없었고 김현식 이후에 김현식이 없었다.
1990년 세상을 떠난 김현식씨는 30대 이상에겐 추억이지만, 젊은이들에겐 그저 노래로만 남아 있는데요.
오늘 가수 김현식의 인생과 음악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 마련했습니다.
화면으로 만나보시죠.
올해 김현식씨의 20주기를 맞아 추모 열기가 뜨거운데요.
Q4> 가수 김현식의 음악이 이렇게 오랫동안 사랑받으며 회고되는 이유가 뭘까요?
A4> 김현식은 로커였지만, 록음악만 하지는 않았다. 386세대의 18번으로 남은 <사랑했어요> 같은 노래엔 한국형 발라드의 원형뿐 아니라 트로트의 흔적도 뚜렷하고, <비처럼 음악처럼>엔 블루스의 느낌이 가득하며, <골목길>엔 요즘의 리듬앤드블루스(R&B) 뺨치는 그루브가 넘친다. 트로트의 고전을 블루스로 재해석한 <이별의 종착역>, 이전에 다른 가수들도 불렀지만 김현식의 노래로 남은 <골목길>에서 보듯이, 그의 노래엔 타인의 노래마저 자신의 오리지널로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1980년대 당시엔 현실 참여적인 음악과 대비돼 탈정치적 음악으로 여겨졌던 그의 노래는 사후 20년이 지난 오늘에 좁은 의미의 정치성을 넘어서는 80년대성이 가득하다. 남성적인 직선을 그리며 뻗어가는 초기의 고음에서 대패로 긁은 듯이 아름다운 무늬를 그리며 갈라지는 후기의 저음까지, 지금 들어도 그의 음악은 80년대의 낭만과 우울을 오롯이 불러온다. 그의 노래는 대개 사랑과 이별에 관한 것이지만, 그에겐 주류 혹은 자본과 체질적으로 타협하지 못하는 반골 기질이 있었다. 그것이 로커 혹은 뮤지션 김현식의 신화를 완성한 최후의 조각이다.
오늘 만나볼 대중음악의 전설 가운데.
가장 ‘현재 진행형’인 인물을 만나볼 차례입니다.
Q5>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은 가수 신승훈씨 입니다.
A5> 1집 앨범인 '미소 속에 비친 그대'(1990)는 신승훈이 직접 작곡, 작사 한 곡으로 이듬해 KBS 가요톱텐 5주 연속 1위로 골든컵을 차지하는 등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또한 이 앨범은 140만장이나 팔리며 데뷔 앨범으로는 처음으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신승훈기록>
* 지금까지 앨범판매량 1500만장 (서울 - 부산고속도로4번왕복)
* 지금까지 발표한 정규앨범 10장 모두 골든디스크 선정 (대상 92,93년)
* 2집 '보이지 않는 사랑'으로 14주 연속 1위 기네스 등재
* 90년부터 2000년까지 10년 동안 가장 1위를 많이 한 노래의 작곡가이자 가수로 선정
* 트로피 700여개
그럼 지금의 가수 신승훈을 있게 한 그 노래를 안 들어볼 수 없겠죠.
신승훈씨도 벌써 데뷔 20주년이지만 앞의 조용필씨나 김현식씨에겐 후배인데 Q6> 앞으로 대중음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런 걸출한 후배들이 계속 나와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A6> 가수 신승훈이 일본에서 열린 20주년 콘서트에서 두 번의 기립박수를 받아 감동의 무대를 선사했다. 이날 공연에 참석한 일본 최대 음반사인 에이백스의 한 음반관계자는 “‘20주년’이라는 타이틀에 맞게 잘 짜여진 레파토리와 신승훈의 뛰어난 가창력과 열정적인 무대매너,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무대 구성까지 지금까지 본 어떤 공연보다 완벽한 공연”이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어 “해외아티스트가 이렇게 기립박수를 받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설명했다.
‘음악이 흐르는 세상’ 오늘은 대중음악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뮤지션들에 관한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말씀 나눠주신 임진모 대중문화평론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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