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복무제 깃발, 휘날리다
시민단체 서명운동과 홍보캠페인 시작… 찬성하는 당선자 많아 입법 힘 받
을 듯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대체복무제 입법운동으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병역
거부 연대회의)는 5월24일 서울 안국동의 느티나무 카페에서 대체복무제
입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대회의는 이날 대체복무제도 초안
의 뼈대를 공개하고, 앞으로 서명운동과 홍보캠페인을 시작할 계획을 밝혔
다.
병역거부 연대회의가 이날 공개한 ‘대체복무법의 주요 골자’에는 대체복무
의 기간과 종류 등이 제시돼 있다. 이에 따르면, 대체복무 기간은 현역병에
준하거나 현역병의 1.5배를 넘지 말아야 한다. 이는 국제 기준에 따른 것이
다. 국제사면위원회(AI)는 각국 정부에 대체복무 기간이 군복무의 1.5배를
넘어서는 안 된다고 권고하고 있다. 유엔인권위도 1998년 결의안을 통해
“징벌적이지 않는 성격의 대체복무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
다. 실제 대체복무가 실시되는 대부분의 나라가 이 가이드라인을 지키고 있
다. 독일은 현역병 대체복무 기간이 현역병 복무 기간인 9개월보다 1개월
길고, 대만도 현역병보다 1.5배 긴 33개월의 대체복무를 실시하고 있다.
병역거부의 ‘이유’도 종교적 양심으로만 제한하지 않는다. 평화주의, 생태주
의 등 윤리적·도덕적 이유도 양심상의 이유로 인정된다. 병역거부자가 병역
거부 신청서와 이유서를 제출하면 공무원, 변호사, 성직자 등으로 구성된
대체복무위원회가 심사하게 된다. 병역거부의 진정성이 확인되면 대체복무
를 하게 된다. 대체복무자는 복지시설, 재난구호, 환경보호 등 ‘비전투’ 분야
에서 근무하게 된다.
현재 징병제를 실시하는 국가 중 대체복무를 인정하는 나라는 덴마크, 프랑
스, 체코 등 25개국에 이른다. 남북한과 중국, 쿠바, 그리스 등 48개국은 대
체복무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 병역거부 인정과 대체복무 실시는 1776년 미
국의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처음 시작됐다. 이어 1916년 영국 정부가 평화주
의자들의 대체복무를 인정했고, 1920~30년대에 덴마크와 네덜란드 같은 북
유럽의 신교국가에서 병역거부가 인정됐다. 양심의 자유가 종교혁명을 거
치면서 형성된 개념이기 때문에 북유럽의 신교국가부터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가 인권으로 인정된 것이다. 1960~70년대에 들어서면서 프랑스, 이탈
리아 등 남유럽의 가톨릭 국가로 병역거부권은 확산됐다.
대체복무 초안을 마련한 ‘병역거부 연대회의’에는 평화운동가, 변호사 등 다
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종교적 병역거부자의 변론을 해온 임종인 변
호사는 지난 총선에서 17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병역거부 연대회의 공
동집행위원장인 이석태 변호사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회장으로
단독 출마한 상태다. 이 밖에도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최정민 평화인권연
대 활동가 등이 공동집행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
원은 병역거부자들과 지지자들의 모임인 ‘전쟁 없는 세상’의 후원회장을 맡
고 있다.
이미 대체복무제 입법 시도는 한 차례 좌절을 겪었다. 2001년 당시 민주당
의 장영달, 천정배 의원 등이 종교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를 내용으로 법
안을 추진하기도 했으나 기독교계 등의 반발에 부딪혀 입법이 중단된 것이
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지난 대선에서 대체복무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
웠고, 민변 출신 국회의원들이 대체복무제 도입에 공감하고 있어 입법 추진
이 이전에 비해 힘을 얻을 전망이다.